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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인간 섬: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기사 작성일 2021-03-17 09:48:14 최종 수정일 2021-03-17 09: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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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난민에 대한 '부끄러움의 힘'

     

    "나는 장 자크 루소가 남긴 말을 떠올린다. 자연이 그에게 이성의 지지를 등에 업은 동정심을 부여해 주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한낱 괴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146페이지)

     

    지글러의 『인간 섬』은 한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도되던, 그러나 어느 순간 뉴스에서 사라진 현재진행형의 난민 상황을 한 편의 흑백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사진들은 많은 사람들이 굳이 외면하고자 하는 충격적이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분노와 좌절을 감춘 담담함으로, 그리고 또 어떤 때에는 희망적인 기대를 안고 그려내고 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으로 촉발된 시리아 난민은 2011년에 이미 약 560만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11년 12월, 유럽에 도착한 난민은 8천명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약 665만명으로 단일 난민으로 최대 규모가 되었다.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의 수도 2014년 약 23만명에서 2015년 약 1백만명으로 급증하였다.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한 난민 수도 2015년 5천명 이상이었다가 점차 감소하고 있으나, 2020년에도 여전히 1천277명에 달하고 있다.

     

    난민들은 왜 고향을 떠나게 되는가? 어떻게 유럽에 도착하는가? 지중해를 건너고 수년 간 난민심사를 기다리는 난민들의 삶은 어떠한가? 난민들에 대한 지원은 충분한가?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들이 왜 인신매매범으로 기소되기도 하는가? 유럽연합의 난민 지원 예산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왜 난민 보호가 아닌 '국경치안기술'에 배정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170여쪽에 불과한 작은 책에서 이 많은 문제를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아빠가 시리아 공군 비밀요인에게 체포되고 이후 아무도 아빠를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하던 아이의 엄마, 형, 여동생은 폭풍이 몰아치는 밤, 해협을 건너던 중 모두 익사했다. 이렇게 도착한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에는 이미 수용인원을 훌쩍 넘긴 난민 캠프 밖까지 판자촌이 이어진다. 100여명 당 1개의 화장실, 150명 당 1개의 샤워 꼭지를 공유하고, 식량과 안전한 잠자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난민들이 모리아 난민 캠프까지 도착하는 길은 험난하다. 고향을 등지며 마련한 비용은 유럽에 도착할 즈음에는 바닥난다. 터키를 출발해 35유로를 주고 한 시간 반이면 건너는 페리 항로를 1인당 500유로에서 1천유로를 내며 고무보트를 이용해 건넌다. 유럽연합 국경을 책임지고 있는 프론텍스(Frontex)는 '푸시 백(push back)' 작전을 통해 이들을 공해상이나 터키 영해로 밀어내고 있다. 난민정책의 한계는 비단 '푸시 백'에 그치지 않는다. 난민을 심사하는 과정은 기나긴 여정이며, 모리아 난민 캠프는 그 기다림의 시작에 불과하다.

     

    난민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2016년, 저자가 '메르켈의 배신'이라고 말하는 유럽연합과 터키 간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시리아 난민 이외의 모든 난민을 제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난민 유입을 막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의 지원금은 난민 지원이 아니라 터키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난민의 수용 및 심사과정에서의 비전문성과 선진국의 관심 저하도 난민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지중해를 건넌 후 경찰의 개입으로 아이가 부모와 헤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아이가 다시 부모를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엔난민기구도 상시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지만 선진국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지원금을 줄이고 있다.

     

    『인간 섬』은 난민을 지원하는 그리스 시민들과 유럽의 시민단체들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헌신과 환대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지중해상에서의 난민구조 활동은 법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해난 구조활동은 장려를 넘어 국제법적으로 권장된다. 그러나 지중해상의 난민구조 활동은 인신매매 혐의로 기소될 수 있는 활동이 되고 있다. 

     

    왜 난민예산이 국경치안 기술개발 사업을 발전시키고, 고장 난 고무보트를 섬까지 끌고 갔다는 이유로 불법인신매매 혐의로 기소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인간 섬』은 유럽의 전략이 심각하게 비도덕적이며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이 비용을 부담하는 사전접수센터인 ‘핫 스폿’ 폐지, 반난민 국가들에 대한 지원금 중단, 유럽 내 보편적 망명권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인간 섬』은 많은 사람들이 회피하고자 하는 난민 캠프의 비인간적인 상황을 짧지만 강렬한 톤으로 보여주고, 인도주의적인 문제가 어떻게 상업화되고 부패와 연결되고 있는지, 현행 법제하에서 난민구조와 인신매매가 왜 쉽게 구별되지 않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저자는 '부끄러움의 힘'과 연대가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2020년 9월 모리아 난민캠프는 전소되었다.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전에 왜 빠졌는지, 왜 조금 더 조심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는다. 『인간 섬』은 우리가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부끄러움이 가지는 힘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저자: 장 지글러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회 부의장
    역자: 양영란
    출판사: 갈라파고스
    출판일: 2020. 10.
    쪽수: 181
    서평자: 김성진 덕성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영국 글래스고대학교 지역정치 박사)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케이트 에번스 지음 
황승구 옮김 
푸른지식, 2018 
184 p.
    케이트 에번스 지음 / 황승구 옮김 / 푸른지식, 2018 / 184p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2016 
227 p.
    장 지글러 지음 / 유영미 옮김 / 갈라파고스, 2016 / 2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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