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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 과잉과 양심 부재의 시대

    기사 작성일 2021-02-04 09:22:54 최종 수정일 2021-02-04 09: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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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자연적 양심과 양심의 역사 사이에서

     

    "양심은 도덕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도덕은 선과 악을 구별해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양심은 오히려 인간 영혼을 이루는 부분, 타고난 것이든 습득된 것이든 영혼의 부분이다."(8페이지)
      
    양심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고 본 저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인류 양심의 기원과 전통에 대한 독재자 히틀러의 망상과 착각에 대한 것이다. 진지한 정치적 관점에 더해 고대사상의 문헌분석과 역사적 사실을 엮는 저자의 접근법은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경멸과 편견 속에 유대인의 발명품에 불과한 양심은 역사에서 제거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틀러의 주장은 단지 유대 전통에 대한 피상적 인식과 왜곡된 사실해석에 근거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대교 전통에서 계율을 어기고 인간이 느끼는 죄책감을 담은 용어는 '아본(avon)', '하타트(hatat)', '아샴(asham)' 등이다. 이 세 단어는 모두 내면의 깊은 목소리인 양심이라기보다 관습법적인 맥락에서 책임감과 더욱 결부되는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양심의 시초가 유대교의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고대 그리스에서 선과 악은 유일신이 확정해준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필연적으로 얽혀있다.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도 인간이 자연적으로 느끼는 감정인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서 '아이도스(aidos)'의 개념이 있었다. 저자는 특히 진정한 양심의 개념이 소포클레스 비극의 주인공인 안티고네의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고 본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크레온에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한 오빠 폴리네케스의 시신을 묻어주기를 원하지만 왕의 명령에 의해 저지당한다. 친족의 장례를 치루지 않게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은 행동이라며 죽음의 위협에도 그녀는 자신의 뜻을 결코 굽히지 않는다. 외부의 명령이나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오직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세상에 맞서는 결정을 내린 안티고네는 비로소 고대세계에서 진정한 양심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학파는 인간에 내재한 이성을 강조하면서 양심의 개념을 정교하게 발전시킨다. 모든 인간은 참다운 삶을 위해 이성을 사용하여 미덕을 추구할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인 필론이 제시한 '시네이데시스(syneidesis)'는 인간이 지닌 이성의 핵심적인 능력으로서 결국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의 정신은 그 내부에 덕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일종의 감시자인 판관을 세워놓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본성을 지닌다. 이러한 개념을 이어받은 키케로, 세네카 등 로마시대의 사상가들은 라틴어 단어인 '콘스키엔티아(conscientia)'를 사용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의 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양심의 자연적 관념을 계승한다. 이후 제정 로마 초기에 등장한 기독교의 가르침은 양심의 존재를 자연을 창조한 절대 유일신의 힘과 결합시켰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창조자로서의 인격적인 신이 개인의 일상에 항상 깊숙이 관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연적 이성을 초월해 스토아적 개념을 유일신을 향한 절대적 믿음과 결합시킨 기독교적 양심은 오랜 세월 서구의 역사를 지배했다.
        
    기독교적 양심의 개념은 현실에서 선택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적 양심의 또 다른 차원과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마침내 고대사상의 부활과 함께 근대의 포문을 연 르네상스 시대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정치와 양심의 대립구도를 주창한다. 마키아벨리에게 인간의 정치적 삶을 이끄는 실제적 힘은 양심이 아니라 이해타산 속에 갈등과 투쟁을 야기하는 '네세시타(necessita, 필연성)'라는 자연적 이치다. 이후 근대 사상체계의 방점을 찍은 19세기의 헤겔은 양심의 절대적 기반을 이성의 구현으로서 세계역사의 발전을 추동하는 '세계정신(Weltgeist)'으로 제시했다. 헤겔에게 개인과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정신의 완벽함을 실현하는 것은 국가다. 이제 인류는 삶의 근원적 지침을 내면적 양심이 아닌 국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국가는 그 숭고한 이익을 위해 개인과 사회의 의무를 절대적으로 부과하는 윤리적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러한 근대성의 끝에 국가의 윤리적 의미를 왜곡하고 마지막 남은 이성과 양심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등장한 것이 바로 20세기 초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였다. 나치즘의 현실 속에서도 결코 인간적 양심은 제거될 수 없었다. 독재체제의 감시 하에 유대인을 돕는 것이 너무나 위험했음에도 많은 비유대인 조력자들은 위험에 처한 타인들을 돕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저자의 역사적 관찰을 통해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인간적 본성과 만나게 된다. 양심의 문제는 오늘날 로봇에 의해 인간정신을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섣불리 믿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통찰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인류는 내면의 목소리를 규명하고자 처절하게 노력해 왔지만 양심은 아직도 모호한 개념으로 남아있다. 여전히 양심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 과연 인간의 마음을 지닌 기계를 창조해 낼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진지하게 물을 수밖에 없다. 양심은 대체 무엇이기에 아직 문제로 남아있는가?

     

    저자: 마틴 반 크레벨드(히브리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출판사: 니케북스
    출판일: 2020. 10.
    쪽수: 463
    서평자: 이상원 인천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정치학 박사(정치사상))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지은이: 소포클레스 
옮긴이: 이미경
별글, 2018 
234 p.
    소포클레스 지음 / 이미경 옮김 / 별글, 2018 / 234p

     

    키케로 지음 
허승일 옮김 
서광사, 2009 
166 p.
    키케로 지음 / 허승일 옮김 / 서광사, 2009 /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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