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물 및 보고서

    홈으로 > 국회소식 > 발행물 및 보고서

    [서평]과학의 반쪽사: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기사 작성일 2023-09-06 09:05:17 최종 수정일 2023-09-06 09:05:17

    •  
      url이 복사 되었습니다. Ctrl+V 를 눌러 붙여넣기 할 수 있습니다.
    •  
    644. 과학의 반쪽사.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전 지구적 교류와 협력의 과학사

     

    "과학이 유럽에서 발명되었다는 신화는 거짓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나머지 세계 대부분이 이야기에서 제외된다면 그들이 전 세계 과학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일할 희망은 거의 없다."(471쪽)

     

    2020년 초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하버드 대학의 한 과학자를 체포했다. 그가 중국을 위해 미국 나노과학의 중요 정보들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받은 사실을 감추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은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시대,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한 경쟁과 반목이 극에 달한 상황을 보여준다. 『과학의 반쪽사』는 21세기 지정학적 변화와 과학기술을 둘러싼 갈등을 반영한 책인 동시에, 교류와 때로는 약탈로 점철되어 온 세계사적 흐름에서 과학기술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역사를 요구하듯이, 이 책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과학사를 표방한다. 이는 무엇보다 기존의 유럽 중심적이고, 개별 '천재' 과학자들에 초점을 둔 과학 발전사로부터의 탈피이다. 이 책은 16~17세기 코페르니쿠스와 뉴턴과 같은 이들의 업적에 기반하여 근대과학이 유럽에서 등장했다는 기존의 과학혁명 서사를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15세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만남, 그리고 이슬람과 아시아에 걸쳐 나타난 활발한 교류가 근대과학의 등장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15세기 건설된 아즈텍제국의 식물원에 관한 논의를 시작으로 식민주의가 유럽의 자연사, 의학, 지리학을 변화시켰으며, 런던과 파리의 학자들이 이슬람 천문학자들이 건설한 사마르칸트 천문대에서부터 베이징의 흠천감(欽天監)과의 교류를 통해 수학과 천문학의 혁명적 변화를 끌어냈다고 지적한다.

     

    『과학의 반쪽사』는 그 주장의 대담함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루는 시기 또한 매우 방대한 책이다. 저자는 15세기 신대륙 탐험을 시작으로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달, 20세기 세계대전, 냉전과 반제국주의 부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커다란 굴곡점들에서 나타났던 지적 교류와 확장, 지배와 착취, 경쟁과 분열이라는 맥락에서 근대과학의 등장과 중요한 발전을 위치시키고 있다. 과학은 노예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확장, 전쟁과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같은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장에서 일어난 전 세계적 차원의 문화적 교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뉴턴은 노예무역을 독점했던 남해회사에 투자하며 큰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적도에서 이루어진 자전 실험 등 전 지구적 탐험의 성과들을 적극 활용하여 만유인력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진화론은 19세기 산업혁명과 제국의 팽창 와중에서 얻은 수많은 탐사 자료를 바탕으로, 자연의 질서뿐만 아니라 산업 사회 질서의 등장을 변화와 경쟁의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했다. 원자폭탄의 발명은 파시즘의 등장, 세계대전과 분열의 와중에서 평화를 기원했던 유럽과 미국 과학자들의 협력의 놀라운 성과이자 비극이기도 했다.

     

    『과학의 반쪽사』는 주변부화된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5세기 동안 인류의 과학적 성취에 기여했던 이슬람과 아프리카의 학자와 장인들, 인도와 중국, 일본의 과학기술자들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학에 대한 이해가 맥락에 따라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깨닫는다. 20세기 초 청의 몰락을 경험한 중국인들에게 과학은 전통문화와 지식을 극복할 새로운 대안이었다. 이에 5.4 운동의 지도자들은 큰돈을 들여 아인슈타인을 초청하여 현대 과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이제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과학연구자금을 투자하는 나라이자, 가장 많은 논문을 출판하는 나라로 부상했다.

     

    『과학의 반쪽사』가 그리는 과학은 세계사의 새로운 분기점마다 경쟁과 협력, 지배와 저항의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교류와 사고의 다양화를 통해 진화되어 온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세계 과학사 서술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건강한 경쟁과 협력을 유지하며 지리적,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과학자 공동체 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 지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우리는 이데올로기와 갈등의 시기를 극복하고, 21세기 생명공학과 AI 혁신을 통해 보다 풍요롭고 정의로운 경제와 사회를 창출하고, 기후 온난화와 같은 위기의 극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제임스 포스켓(워릭대학교 과학기술사 조교수)
    역자: 김아림
    출판사: 블랙피쉬
    출판일: 2023. 3.
    쪽수: 535
    서평자: 이두갑(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644. 객관성의 칼날.jpg
       찰리 길리스피 지음 / 이필렬 옮김 / 새물결출판사, 2005 / 592쪽

     

    644.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jpg
                       민태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2023 / 316쪽


    '생생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 CCL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표시
      라이센스에 의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저작자 표시 : 적절한 출처와 해당 라이센스 링크를 표시하고 변경이 있을 경우 공지해야 합니다.
    • 비영리비영리 : 이 저작물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저작권 표시 조건변경금지 : 이 저작물을 리믹스, 변형하거나 2차 저작물을 작성하였을 경우 공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