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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휴먼네트워크 전문가 서평]김일성 이전의 북한

    기사 작성일 2019-10-02 10:51:38 최종 수정일 2019-10-02 10: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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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이전의 북한.JPG

     

    소련은 1991년 12월 26일에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1989년 초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시작된 동유럽혁명은 2년여 만에 70여 년간 건재했던 소비에트 연방을 무너뜨렸다.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시작된 소련자료의 기밀해제는 많은 자료들에 대한 역사연구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소련의 비밀역사창고문의 개방으로 새로운 사실들이 튀어나왔다.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은 북조선에 소련식 제도를 설치하지 말고 부르조아 민주주의 제도를 설립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실은 1993년 2월 26일자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조선정책에 관한 스탈린의 명령 전문에 대한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에 대한 접근을 "결을 거슬러 역사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소련의 해체는 그야말로 한반도 현대사에 대한 대세를 거슬러 역사의 먼지를 털어낼 역사가들의 시간을 만들어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김일성 이전의 북한이 담고 있는 북조선의 역사는 시간상으로는 2개월 남짓하다. 정확히 말하면 67일간의 짧은 국면 동안의 조선 북반부의 역사를 다뤘다. 1945년 8월 8일 모스크바 시간 17시, 도쿄시간 23시에 소련은 일본에 "소비에트 정부는 내일 즉 8월 9일부터 소비에트 연방과 일본 사이에 전쟁상태에 돌입함을 선언한다"는 선전포고를 통보했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 8월 9일부터 10월 14일 평양의 대규모집회에 김일성이 첫 등장을 했던 그 시간까지, 즉 김일성이 없는 북한의 시간을 다뤘다. 이 시기는 북한역사연구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대부분 김일성 등장이후의 북한에서 북한의 역사서술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일성 이전의 북한은 이러한 대세에 가려져 두껍게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고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었다.  

     

    김은주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

    이 책은 크게 3가지 내용으로 구성됐다. 소련의 북조선 점령과정과 해방직후 북조선의 정치사회에 대한 평가 그리고 소련에 의한 김일성 옹립과정에 대한 서술이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점령국이었던 소련의 이해와 평가로 이뤄져있다. 각주로 달린 무수히 많은 소련문서가 이를 입증한다. 저자는 이 시기가 북한 역사상 북조선 인민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유일한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많은 북한역사연구자들에게서 지워진 역사로 방치돼 있던 그 시간에 북조선 인민들에 의한 그들의 정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2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북조선에 있었던 정당과 사회단체들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서사였다. 

     

    소련군대는 그들의 상급기관에 깨알 같은 보고를 했다. 조선공산당에 대해서는 박헌영과 이영간의 분파주의를 경고하며, 소련은 박헌영을 지지해야 하며, 이영은 소련의 현실을 왜곡해서 소련의 생활을 매우 이상화하는데 이것은 상당히 큰 해로움을 준다고 평가했다.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족사회당은 총독부의 괴뢰나 반동테러집단으로, 신의주에서 생긴 조선사회민주당과 우리청년회는 공산주의정권에 대해 불만을 가진 주민들을 결집시키는 핵심조직으로, 부르조아 민주당은 반일 부르조아 민주세력의 단결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조선대중당은 테러집단으로, 대동이라는 단체는 미국정보국의 정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남한만큼은 아니었으나 북조선에도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다양한 정당과 사회집단의 정치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가 소련문서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발견도 있었다. 함흥 시위. 이 시위에 대한 연구는 물론 기존연구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북조선 주민의 정치 상태에 관한 보고'에 의하면 1945년 9월 15일 함흥에서 건국 청년당이 주도한 시위가 발생했고 1000명 이상이 참가했다. 시위 군중들은 붉은 군대가 아니라 미국이 조선을 해방시켰으며 앞으로도 미국의 지도하에 조선건국과정을 진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다음날 공산당은 조선·소련 우정강화를 주장하는 시위를 했고 이 친소 시위에는 3만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보고했다. 이 시기의 북조선도 다른 이념과 지향을 가진 정당들의 정치활동이 가능했던 일종의 해방공간이었다.

     

    1945년 10월 11일 북조선에 주둔한 소련 제25군 사령관은 반일 민주주의 정당의 설립을 허가한다는 제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제령이 공포된 때부터 소련은 북조선의 거의 모든 정치활동을 심각하게 통제했다. 10월 14일 평양집회를 기점으로 김일성 중심의 공산주의 정권의 설립과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동 제령의 발표에 대해 기존연구자들과는 달리 정치의 시작이 아니라 정치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김일성 등장이전의 2개월 남짓한 시간만이 오롯이 북조선 인민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전체 분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록에 있다. 이 부록에는 본문내용에서 언급한 관련 자료들에 대한 한국어와 러시아 원문을 실었다. 저자는 집필동기의 하나로 '김일성 이전의 북한'은 미래의 북한 독자들을 위하여 쓴 책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북한당국에 의해 가장 많이 왜곡된 부분이라고 여겼던 소련에 의한 김일성의 옹립과정을 상세하게 다뤘다. 부록에는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의 실제 연설문과 1970년 중반 북한에서 출판한 연설문을 같이 실었다. 한 장도 안 되는 실제 연설문이 7장이나 되는 긴 연설문으로 뒤바뀐 역사 왜곡의 증거를 감상할 수 있다. 

     

    저자는 책에 수록된 옛 흑백사진들에 가능한 범위에서 색깔을 입혔고 그 이유에 대해 현실은 흑백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변을 달았다. 이는 단지 채색의 변이 아니라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역사인식을 꼬집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은 흑백이 아니다."

     

    저자 :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이휘성)
    서평자 :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서평자 추천도서 : 
    강진웅 저, '주체의 나라 북한: 북한의 국가 권력과 주민들의 삶', 오월의 봄, 2018
    김재웅 저, '북한체제의 기원: 인민 위의 계급, 계급 위의 국가', 역사비평사, 2018
    뤼디거 프랑크 저, 안인희 역, '북한 여행: 유럽 최고 북한통(通)의 30년 탐사리포트', 한겨레, 2019
    박영자 저, '북한 녀자: 탄생과 굴절의 70년사', 앨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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