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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휴먼네트워크 전문가 서평]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

    기사 작성일 2019-09-16 09:28:31 최종 수정일 2019-09-16 09: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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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jpg

     

    사람은 이성으로 살까? 감정으로 살까? 우매한 물음이다. 이성이나 감정 모두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이기에, 이는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묻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 같은 물음은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약 2500여 년 전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은 인간의 삶에서 영혼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영혼을 도야하기 위해 이성이라는 마부가 의지라는 말과 충동이라는 말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이성 중심의 사고는 서양철학에서 중심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다. 약 250년 전에 '이성은 정념(감정)의 노예'라고까지 주장한 흄(Hume)에 이르러 이성 우위의 사유가 흔들리고, 육체와 정신을 구분해온 이분법적 사고가 퇴조하면서 그 기반이 축소됐지만, 여전히 이성을 앞세우는 삶의 방식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나의 의식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이라는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 가정이나 직장, 친구 모임 등 그 어디에서나 나는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로 이성적인 태도와 자세로 견지한다. 지나온 나의 삶을 돌이켜봐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까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밥은 굶지 않을 정도로 생활해 왔다. 그런데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감정이 격렬하게 일렁일 때는 '너는 내가 아니다'고 나를 부정하는 순간도 꽤 있었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기도 했고, 통제되지 않은 말이 새어나가기도 했다. '기표 아래로 기의가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는 라캉(Racan)의 표현대로 내가 억누르고 있던 것이 기억들이 몸서리나 혼잣말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 같은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언제부턴가 나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나를 추동하는 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어느 뇌과학자는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를 비롯한 감정 중추의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전두엽(이성적 사고를 관장하는)을 마치 감정 중추의 대변인 같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정직한 내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오랫동안 도구적 이성으로 정직한 감정을 통제해왔음을 인정하게 됐다. 

     

    상종열 교수
    상종열 한국교원대 교수

    살아가는 데 있어 감정의 중요함을 강조한 철학자 중에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은 스피노자(Spinoza)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이후 사상과 종교에서 자유로운 암스테르담에서 성장한 스피노자는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경직된 유대교 율법을 거부해 유대교 공동체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스피노자는 우리의 영혼이 이성과 감정과 욕망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게다가 이성이 아닌 욕망을 우리 영혼의 본질로 생각했기에 마부의 자리에 이성 대신 욕망을 앉혔다. 스피노자는 이런 욕망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불렀는데, 이는 '자기 보존의 욕망'으로서 모든 생명체가 가진 근원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욕망 이전에 본능에 가까운 원초적인 충동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사유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감정은 욕망의 표현'이었다. 철학자 강신주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의 크기에 따라 호숫가에 부유물이 쌓이는 것처럼 욕망의 크기에 따라 사람의 마음속에는 감정의 흔적이 남는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평생 일과 관계를 통해 살아간다. 그런데 일과 관계에서 욕망이 크면 그에 따른 감정도 커지게 되고, 그 감정을 이성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의식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감정은 의식 영역 밖에 존재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이를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감정은 욕망의 표현'이라는 그의 언명을 통해 비로소 이성과 감정, 욕망과 감정, 그리고 의식과 의식 밖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사유의 틀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스피노자의 '에티카(Ethica)'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소중하게 다뤄야 할 이성과 욕망, 그리고 감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에티카 원전은 기하학적 증명이라는 온갖 난해한 정리와 공리로 제시돼 있어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나 역시도 철학자들이 쉽게 풀어놓은 '에티카' 해설서나 각 분야의 전문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제시한 '에티카'를 통해 스피노자의 사유를 탐구했다. 그중에 정신과 의사로서 철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심강현의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은 내가 가장 쉽게 이해한 저서다. 저자인 심강현은 스피노자가 제시한 이성과 욕망 그리고 감정의 문제를 자신의 철학적 또는 심리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애사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어 초보자들이 읽기에 큰 부담이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나에게 당신은 이성으로 사는가? 감정으로 사는가? 묻는다면 나는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감정을 들여다봐야 하며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또 이 같은 삶의 태도로 인해 타인에게 오해도 받고 손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도구적 이성이 내 감정을 통제하며 사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자기 번민과 고충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은 니체(Nietzsche)가 '정신의 소화불량'이라고 말한 미련이나 '정신의 구토'라고 한 후회의 감정에서 쉽게 휘둘리지 않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처럼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스피노자가 평생을 거쳐 싸우고자 했던 '예속'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삶인 것 같기도 하다.

     

    저자 : 심강현
    서평자 : 상종열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서평자 추천도서 : 
    이진우 저, '니체: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아르테, 2018
    이진경 저, '불교를 철학하다: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휴, 2016
    고영직 저, '인문적 인간: 시와 예술의 힘에 대하여', 삶창, 2019
    장건익 저, '철학의 발견: 희망의 인문학 철학 강의', 사월의책,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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