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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선왕조의 빈곤정책 : 중국·일본과 어떻게 달랐나

  • 기사 작성일 2019-04-03 17:46:05
  • 최종 수정일 2019-04-03 18:01:30
422. 조선왕조의 빈곤정책.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이상국가론(理想國家論)에 갇힌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에 대한 비판

 

"조선왕조의 구빈정책에는 그 대상자에게 스티그마를 부여하여 수급자를 줄이려는 억제정책적 성격이 거의 없었다. 창제도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법가적 제도인창제도를 거의 완전히 유교적으로 해석하여 운영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46페이지)

 

우리 조상의 생활실태를 보여주는 역사서를 읽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특히 과거의 생활용품이나 예술작품을 보는 것은 잊혀진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정작 많은 조상들이 경험했을 빈곤한 삶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저작은 드물다. 왕조의 정책을 말하지만 그것이 실제 민초들의 가난한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말해주는 저작은 더욱 드물다. 우리는 여전히 왕실과 조정 중심으로 역사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궁금증을 '상당부분' 해소시켜주고 있다. 여전히 민초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연구가 드문 상황에서 이에 이르는 징검다리를 놓았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해방 이후 서구식 또는 일본식 복지제도를 수용함에 따라 조선시대 복지제도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 과거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을 중국과 일본의 당시 빈곤정책과 비교하는 대목은 도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독자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를 해왔던 저자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유사한 것처럼 인식돼 왔던 한중일의 과거 빈곤정책이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구별해 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성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비교사회정책사의 방법론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에 주목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동아시아 각국의 사회정책 비교는 시행한 많은 것을 비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누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조선왕조는 당시 중국과 일본의 왕조와 비교해서 빈곤정책 중 어떤 것을 하지 않았는가' 또는 '빈곤정책과 관련해서 무엇을 기피했는가', 이것이 핵심질문일 것이다.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에 대해 저자의 해석은 신랄하기까지 하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왕조가 설계했던 구빈정책과 제도, 창(倉)과 환곡(還穀)제도는 매우 이상적이었지만 제도 이용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고, 제도의 남용, 즉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급기야 구빈제도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 구빈비용이 결국 백성의 부담이라는 것이 모두에 의해 인식되고, 백성들이 불필요한 수급을 하지 않을 때, 진정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받을 수 있고 제도의 지속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이를 위해 제도는 공정한 시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령과 관리 인력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은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그로 인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491페이지)

 

조선왕조는 왜 이러한 빈곤정책을 유지했는가. 저자의 주장은 이 대목에서 매우 도전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성리학이 그려낸 사회시스템은 현실과 괴리된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법가(法家)사상에 근간을 두고 유가(儒家)의 이상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조선왕조는 법가의 전통이 결여된 채 이상주의를 관철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법가의 전통이란 때로는 물가조절 기능을 가진 창(倉)을 통해 시장경제에 대한 강조로 표현되고 때로는 작은 공동체의 책임을 중시하는 사창(社倉)을 통해 제3섹터에 대한 강조로 나타난다. 상평창(常平倉)과 의창(義倉) 그리고 사창에 대한 설명은 오늘날 말하는 정부와 시장 그리고 제3섹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재정이 파탄나고 곡식이 바닥난 상황에서도 한 사람의 굶주린 백성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던 왕조의 통치이념"은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지배층은 이러한 유교적 이상사회를 지탱할 성숙한 행동규범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송나라 주자학이 상정했던 독서인 즉, 걱정은 백성보다 먼저하고 즐기는 일은 백성보다 뒤에 한다는 지도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현장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사창과 환곡 등의 정책과 이념이 조선에서는 외부에서 수입된 책을 통해 교조적으로 학습되고 적용되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물론 정약용 등 실학자들에 대한 비판이나 창의 기능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더불어 조선시대의 창이 오늘날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의 빈곤정책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조선후기에 들어 그 폐해가 극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저자가 말하는 조선왕조 빈곤정책의 두 가지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21세기에도 빈곤문제를 정부재정만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신자유주의적 실험 또한 폐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국가와 개인 간 권리와 의무라는 계약관계를 통해 복지의존이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저자 : 박광준 (일본 붓쿄대학 사회복지학부 교수)
출판사 : 문사철
출판일 : 2018. 12.
쪽수 : 540
서평자 :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파리2대학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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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현, 이방원 공저 / 신정, 2018 / 4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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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준 저 / 양서원, 2013 /  3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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