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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마지막 고래잡이: 라말레라 부족과 함께한 3년간의 기록

  • 기사 작성일 2021-12-15 10:06:08
  • 최종 수정일 2021-12-15 10:06:08
577. 마지막 고래잡이.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같은 배를 탄 운명의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 지키기

 

"생태계의 건강을 위해 생태적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세계화가 초래할 단일 문화의 치명적 약점에 대비해 인류의 회복력을 높이려면 문화적 다양성이 필수적이다."(418쪽)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당시 생활상을 바위에 새긴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유적이다. 이 암각화에는 작살에 꽂힌 고래, 그물에 걸린 고래, 잡은 고래를 끌고 가는 5인용 조각배 등의 고래사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한국에서 이미 사라진 전통적 고래잡이를 인도네시아의 어느 화산섬에서 '라말레라' 부족이 여전히 지켜가고 있다. 이들은 대나무 작살과 목선 그리고 조상의 신화와 이어지는 용맹성으로 거대한 향유고래를 사냥하여 마을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더그 복 클락(Doug Bock Clark)은 이 책에서 3년에 걸쳐 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용기와 지혜를 모아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나가는 이 부족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최근 현대문명의 거센 파도가 밀려와 이러한 전통적 생활 방식이 붕괴할 위기에 처한 안타까움도 전하고 있다.

 

현재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들 부족의 고래잡이를 중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라말레라 부족의 포경은 잡은 것을 팔기 위한 것이 아니고 부족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이 부족이 더는 고래잡이를 할 수 없다면 이들 사회의 문화, 심지어 생존도 유지될 수 없다. 결국, 자연의 생물종과 인류사회의 문명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 생물종과 문화의 긴밀한 관계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태평양에 있는 이스터섬에는 10m가 넘는 키를 가진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황무지 위에 600개 이상이 흩어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원주민 '라파누이' 사람들이 처음 이스터섬에 들어왔을 때는 이 섬의 자연생태계는 야자나무 숲이 우거진 풍부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스터섬에서 인간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야자나무를 마구 베어 배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결국, 야자나무가 사라지고 섬 전체가 황무지가 되었다. 라파누이 사람들은 다시는 배를 만들지 못하여 섬에 고립되고 물고기를 얻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후 문명 활동이 쇠퇴한 이스터섬에는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석상만이 전설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쇠락한 라파누이 부족보다 지속가능성을 지킨 라말레라 부족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라말레라 부족은 매년 고래잡이 철이 아닌 시기에 보릿고개로 기근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이들은 과도하게 고래나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 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울 정도의 식량만으로도 만족해 왔다.

 

전통을 지켜오던 라말레라 마을에도 자동차, 전기, 인터넷 등과 함께 현대문명의 파도가 덮쳐오고 있다. 작살과 목선에 의존하는 고래잡이는 쇠퇴하고, 오래된 고래잡이 노래는 불리지 않고 잊히고 있다. 어망을 가진 엔진 어선으로 물고기가 남획되면서 마을 앞바다는 날로 황폐해져 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자연의 일부만을 이용하는 귀중한 지혜가 고래잡이 노래처럼 잊히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에서도 라말레라 사람들이 용기와 지혜를 모아 함께 울고 웃으면서 거친 파도를 넘어 고래를 잡는 긴장감과 자연에 양보하는 지혜를 현대문명의 조류가 앗아가는 안타까움을 저자는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남획과 환경파괴로 많은 생물종이 빠르게 멸종되고 있다. 특히 해양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인 고래는 포경과 해양오염으로 종수와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만일 향유고래가 '렘바타섬'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고래잡이를 기반으로 하는 라말레라 부족의 전통문화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원칙적으로 생물다양성은 미래의 지구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유전자원이고, 문화다양성은 개인이나 집단의 창조적 사고와 사회 발전의 원천이라고 한다. 하지만 환경파괴에 의한 생물종 멸종은 문화다양성을 감소시키게 된다. 향유고래가 돌아오지 않는 라말레라 마을에서는 BTS 노래가 고래잡이 노래를 대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현대인들은 라말레라 부족이 수 세기에 걸쳐 힘들게 얻은 지식, 기술, 문화가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의심한다. 이들 부족의 작살 고래잡이가 현대 포경선의 작살포보다 효과적일 수 있을까? 라말레라 작살잡이 노인의 기술과 근엄함은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존경받을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멸종위기종에도 할 수 있다. 많은 바다생물 중에서 향유고래 한 종이 멸종되는 것이 중요할까? 고래고기가 필요치 않은 현대인에게 향유고래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향유고래가 멸종되면 라말레라의 고래잡이 노래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라말레라에게는 "Preme ki"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는 "희망을 잃지 말되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는 뜻이다. 우리는 생물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라말레라 전통문화와 같은 배를 탄 운명을 가진 향유고래의 멸종을 앞당길 수 있는 미세플라스틱 위험으로부터 이들을 지키기 위해 '플라스틱 줄이기'와 같은 작은 실천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저자: 더그 복 클락(작가)
역자: 양병찬
출판사: 소소의책
출판일: 2021.4.
쪽수: 469
서평자: 조강현 인하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학 박사)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최재천 지음
arte(아르테), 2017
251 p.
최재천 지음 / arte(아르테), 2017 / 251쪽

 

지은이: 에드워드 윌슨
옮긴이: 이한음사이언스북스, 2017
342 p.
에드워드 윌슨 지음 /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2017 / 
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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