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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증거의 오류: 데이터, 증거, 이론의 구조를 파헤친 사회학 거장의 탐구 보고서

  • 기사 작성일 2020-05-27 09:28:00
  • 최종 수정일 2020-05-27 0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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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이론은 데이터가 아닌 증거가 뒷받침 한다

 

"데이터의 유용성이 그 데이터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좌우되고 결정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데이터의 정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전제 하에 데이터를 그대로 쓸 수 있긴 하지만, 이때 사회학자는 반드시 데이터가 어떠한 이론이나 아이디어의 증거로서 타당한지를 거듭 생각해야 한다."(228∼229페이지)

 

사회 곳곳에서 놀라운 속도로 축적되고 있는 디지털 데이터는 현 시대 사회과학자들을 '증거 기반(evidence-based) 연구'로, 정책관계자들을 '증거 기반 정책'으로 눈 돌리게 했다. 이러한 흐름에는 데이터가 넘쳐나면 증거도 넘쳐날 것이라는 순진한 전망이 깔려있는데, 이 책은 이러한 전망이 어떻게 비과학적 오류로 흘러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내가 그러한 순진한 전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비록 저자는 디지털 데이터나 증거 기반 연구의 흐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지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데이터가 넘쳐나는 현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그 메시지는 바로, 증거는 데이터와 이론을 연결해주는 핵심적 고리이며 이론은 데이터가 아닌 증거로 뒷받침된다는 사실이다.

 

사회학의 역사에서 사회조사 데이터는 이런저런 잘못된 방식으로 증거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한 방식은 참으로 다양한 사회적 원인들에 의해 유발되기에, 저자는 데이터와 증거 간의 간극 자체가 사회학적 연구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의 4장부터 8장까지 보여주는 다양한 오류의 일부는 이미 사회연구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사회조사를 통해 민족이나 인종을 분류하는 방식이 그런 예인데, 이 책은 그러한 오류를 재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동료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를 소개하면서 오류가 발생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금은 미국의 '라티노(Latino)'라는 인구집단이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지만, 이 범주는 실은 배경이 전혀 다른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쿠바 이민 집단이 1970년대 이후 정치적 목적에 의해 창출한 '범민족적인 정체성'(4장)이었다.

 

사회조사 데이터의 증거로서의 유동성은 정치사회학적 요인에 의해서만 유발되지 않는다. 면접조사원의 이해관계가 조사해야 하는 질문의 특성과 충돌할 때에도 발생한다. 미국의 종합사회조사가 1985년과 2004년 조사에서 반복 질문한 문항들을 비교한 결과 미국인의 사회적 관계는 크게 감소했고, 이는 당시 미국인의 사회적 자본이 감소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과 맞물려 큰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면밀한 후속 검토에 따르면 2004년 조사에서 발견된 감소한 사회적 관계는 유독 일부 조사원의 면접지에서 나왔다. 그 조사원들은 응답자의 지인 관계를 열심히 알아내기 위한 복잡한 보충질문들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6장)된다.

 

사회조사보다 빅데이터의 활용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라면 7장을 주목할 만하다. 사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회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전략은 통계적 분석기법보다는 정성적 연구방법과 공통점이 많다. 빅데이터는 관찰대상의 의식을 물어 측정하기보다는 대상이 남긴 흔적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현장 연구를 닮았다. 현장연구가 관찰한 바를 코딩하고 표로 정리하는 과정(7장)은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텍스트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방식의 모범을 보여준다. 데이터와 증거 간 간극을 줄이려는 현장연구자의 집념을 체득한 데이터 과학자라면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사회 연구자가 될 것이다.

 

이 정도까지 책을 읽은 독자라면, 저자가 현장연구자이기 때문에 정량적인 연구만 편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관점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1장·2장), 본인 연구의 결함을 예로 들며 정성적인 현장연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도 지적(8장)하고 있다. 저자는 1930년대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이 주요 의사결정자의 문화적 편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고 몇 십 년 후까지 연구를 진행했으며 다른 연구자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이 시절 마약과의 전쟁이 마약류 의약품이 유통되는 합법적 시장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과 밀접함을 밝혔고, 저자는 이 연구를 접하고서야 본인의 문화적 설명이 틀렸음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의도적으로 화려한 문체를 구사하지는 않지만 책의 곳곳에 저자의 유머가 녹아있다. 1928년생인 저자가 미국 사회학계의 역사와 갈등을 엿보는 장면(2장)이나, 연주자로서의 자신이 어느새 '꼰대의 반열'에 오른 과정(8장)을 서술하는 과정은 위트가 넘치며, 과학적 오류를 분석하는 과정 못지않게 성찰적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본에 참고문헌 목록과 색인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음 인쇄본에서는 이 점이 보강되어 한국 독자와 미래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이 책의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를 기대한다.

 

저자: 하워드 S. 베커(사회학자, 前 워싱턴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겸 음악학 부교수)
역자: 서정아
출판사: 책세상
출판일: 2020. 2.
쪽수: 427
서평자: 강정한(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 대학원 사회학 박사)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 김영선 옮김 / 김영사, 2009 / 3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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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살가닉 지음 / 강정한, 김이현, 송준모, 윤다솜 옮김 / 동아시아, 2020 /5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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