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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나는 선량한 기후파괴자입니다

  • 기사 작성일 2024-12-04 10:05:05
  • 최종 수정일 2024-12-04 10:08:42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글로벌 보일링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기후파괴의 변명을 넘어 기후친화 구조의 정착으로

 

"우리가 매일 내리는 수많은 결정들은 기후친화적이지 않다. 물론 분리수거를 잘하고 숲에 건전지를 버리지는 않는다. 바다에 기름띠를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중략) 비행기와 자동차의 상용, 육식, 호주산 와인, 아르헨티나산 소고기 스테이크, 수입 열대 과일, 캡슐커피, 반송 가능한 온라인 쇼핑 등등 우리가 매일 내리는 결정들이 생태 발자국 지수를 한정 없이 높인다. 기후-환경친화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소비에 관해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이 결코 그렇지 않음을 대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는 생각과 행동 사이의 모순을 무시, 정당화하거나 어깨 한번 으쓱하고 마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8쪽)

 

올여름은 정말 덥고 습했다. 글로벌 보일링이란 말이 실감 났다. 무더위에 지치자 기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얄팍한 이성은 쉽게 굴복됐다. 에어컨 앞을 떠나기 어려웠다. 지구를 고의로 파괴하는 사람은 없다. 머리론 생태계 보전을 중시하고 입으론 기후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폭염에 과도한 전력 소비를 일삼고 코로나 이후 보복성 해외여행이 폭증해 항적운 등 숱한 기후파괴를 자행한다. 하지만 구구한 변명(이 책의 아래 25가지 변명)만 난무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이 기후친화적 삶을 산다고 착각한다(난 대체로 환경친화적으로 산다, 좋은 의도에서 한 행동이다, 내 잘못이 아니야). 기후 문제 해결에 있어 과학기술 낙관론에 의지한다(문제가 너무 복잡해, 신기술이 우릴 구해줄 거야). 지금 즐기고 다음부터 실천하면 되지 마음먹는다(내일, 다음 달, 내년부터 혹 언젠가). 잠시 환경을 파괴해도 영향은 미세할 거라 단정한다(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때론 나 혼자 환경보호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냐며 합리화한다(다 그렇게 해, 모든 걸 고려할 순 없어). 나중엔 자포자기 심정으로 핑계만 늘어놓는다(너무 늦었어, 난 급진적 자연주의자가 아니거든, 습관 바꾸긴 쉽지 않아). 이처럼 숱한 변명으로 기후파괴 행동을 합리화하며 오늘도 기후파괴에 쉽게 발 담근다.
  
이 책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기후친화적으로 못 바꾸게 만드는 다양한 심리적 장벽이 어디서 오며, 그것들이 어떻게 기후친화적 행위를 집요하게 방해하는지를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 의거해 자세히 설명한다. 예컨대 제한된 합리성, 인지 편향, 사회적 규범과 동조 등 자기방어, 학습된 무력감, 확증편향, 후광효과, 사회적 관행, 도덕적 면허, 환경 원시(遠視), 사건 결과를 긍정적 자아상에 맞게 해석하는 자기 봉사 편향, 사후합리화 등이, 기후친화적이지 못한 생활방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긍정적 자아상을 유지하는 심리장벽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 동기부여 하며 자발적으로 기후친화적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후친화적 삶을 부르는 구조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저자는 말미에서 행동경제학의 넛지(Nudge) 이론을 인용하며, 우리가 기후친화적 결정을 쉽게 내리도록 자가 넛지의 몇 예를 제시한다. 예컨대 항공사 소식 대신 철도 소식지의 정기 수신, 주차장에 자전거 배치, 채식의 날 지정, 유기농 채소의 정기적 구입 등 자신만의 선택구조를 스스로 만들 때 이들 습관 덕으로 기후친화적 선택구조가 마련된다며 자가 넛지의 유용성을 제안한다. 채식주의자들이 자꾸 눈에 띄면 자신도 육식 소비를 줄이게 되는 역동적 규범도 강조한다.

 

단, 기후친화적 구조변화를 가져오는 개인적 토대 마련에 긴요한 생태교육, 생태 윤리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이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기후-생태 위기는 도구적 자연관과 인간중심주의 등 우리들 마음의 문제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자원이나 개발 대상으로만 보는 도구적 자연관의 폐해, 생태계가 인간 삶의 터전임을 깨우치는 전체론적 사고, 생태계 일원으로서 인간의 생태적 배태성 등 어릴 때부터의 생태 소양 교육, 생태 윤리 학습의 정례화는 마음의 생태학을 가꾸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기후변화의 핵심 변수라면 사람을 기후친화적으로 키우는, 혹은 기후파괴에서 최소한 벗어나려는 성찰적 인간으로 만드는 교육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할 만하다. "포기하는 순간 핑계를 찾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방법을 찾는다"란 말이 있다. 정현종 시인의 시구처럼 "짐승스런 편리보다 사람다운 불편"이 어려서부터 몸에 배게 학습해야, 변명보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하고 윤리 소비의 체화가 가능해진다. 생태교육을 통해 길러진 생태 윤리가 기후친화적 거시구조 변화를 낳는 미시적 행위의 토대로 늘 작용할 때, 저자가 강조하는 자가 넛지도 남의 눈을 의식해 몇 번 하다 마는 일회성, 과시성에서 벗어나, 역동적 규범의 행위 효과를 높여주고 기후친화 구조 정착을 앞당기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생태교육, 윤리 논의는 좀 아쉽지만, 지구 보일링 시대에 짐승스런 편리에 빠진 우리의 얄팍한 마음과 변명을 앞세운 행동이 생태 발자국을 크게 낳음을 성찰하며 기후보호, 기후정의의 필요성을 깨우치는 데 유용한 저서로 생각된다.

 

저자: 토마스 브루더만(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 환경시스템과학 교수, 환경운동가)
출판사: 동녘
출판일: 2024
쪽수: 311
서평자: 이도형(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최재천 지음 / 김영사, 2021 /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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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켄세이 / 달팽이출판, 2012 / 303쪽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 달팽이출판, 2012 /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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