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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재수사: 장강명 장편소설

    기사 작성일 2023-12-06 09:11:43 최종 수정일 2023-12-06 09: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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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한국사회의 공허를 응시하는 살인자의 눈

     

    "내 안의 스타브로긴은 도스토옙스키와 니체 사이에서, 카뮈나 사르트르와는 다른 길을 모색한다. 내 안의 스타브로긴은 내게 그들보다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다고 본다. 그들과 달리 나는 살인자다. 나는 선 바깥에 있다."(1권 101쪽)

     

    당신에게 청춘은 무엇으로, 혹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그 시절을 지나와 버린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 미화된 것이기 쉽다. 도리어 그 시간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당사자들에게 청춘은 방황과 절망, 그리고 고통과 환멸의 시간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 날 "나는 병든 인간이다"는 도스토옙스키의 그 선언적 명제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매혹되는지도 모른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장강명이 돌아왔다. 원고지 총 3,000여 매 분량, 100여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서사적 줄기를 갖는다.

     

    소설의 첫 번째 줄기는 살인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형사들의 이야기다. 22년 전에 일어난 신촌 원룸 여대생 살인사건은 2022년 현재, 젊은 여형사 연지혜에 의해 원점부터 재수사된다. 충실한 보고와 사실적 묘사,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와 예상을 뒤엎는 결말, 소름 끼칠 만큼의 현실감각이 돋보이는 서술은 신문기자 출신 장강명이 그의 장점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말로 '공허'와 '불안'을 꼽는다. 이는 작품에서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며 20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절망적 상황으로 대변되는데, 이는 22년 후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작가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재판, 형사, 경찰, 사회, 의료, 교육, 경제구조를 포함한 모든 것이 그 대상이다. 사회를 굳건히 받쳐오던 모든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결국 시스템마저도 실체 없는 환상이라는 명제에까지 이른다. 이는 인류의 역사를 형벌과 감옥의 역사로 규정하며, 제도의 문제를 환기한 미셸 푸코를 떠올리게 한다. 미셸 푸코에게 역사는 시스템의 역사이며, 근대 이후 인간을 통제하는 강력한 감옥은 구체적인 실체가 아닌, 시선의 감옥(파놉티콘)일 때 더욱 강력한 것이다.

     

    소설의 두 번째 줄기는 살인범 김상은의 고백록이다. 그간의 장강명 소설을 아는 우리에게 철학적 사변으로 무장한 이러한 장은 다소 낯설다. 무엇보다도 '어렵다'. 왜 어려운가? 먼저는 범위와 대상의 광범위함 때문에, 다음으로는 서술의 추상성 때문에 그러하다. 범인의 목소리는 인류 역사와 사상사를 총체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내재한 공허의 기원을 계몽주의에 둔다. 여기에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 진화론, 민주주의의 문제를 함께 기술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어떤 구체적 형상화의 과정이나 문학적 외피 없이 철학적 사변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와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 신계몽주의, 비극적 의미에 대한 해석의 변천, 도덕적 책임의 원근법, 사실-상상체의 복합체로서의 현실적 대안 등 또한 그렇다. 여기에 니체로부터 카뮈, 사르트르, 도스토옙스키에 이르기까지, 난해함과 모호함 때문에 대중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지 않는 철학·문학적 고전들이 범죄자의 고백 속에 집결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작가의 야심 찬 포부와 시도는 빛이 난다. 지적 사유와 인류 사상사를 검토함으로써 현재 우리에게 유의미한 통찰력을 제시한다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다만 ‘구체적 형상성’을 놓친 지적 사유와 철학은 얼마나 문학적일 수 있을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재수사』는 작가가 등단작 『표백』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여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매우 상세한 디테일과 함께 보여준 작품이다. 추리물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경찰소설'의 한 형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소설가로서의 작가적 운명을 확인케 해 준다. 첫 인용문, "나는 살인자다. 나는 선 밖에 있다"는 서술로 돌아가 보자. 선 밖에 서 있는 자, 궤도를 이탈한 자만이 삶의 진실을 차가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현실을 대하는 소설가의 시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이 차갑고도 깊은 응시의 시선이야말로 장강명의 소설 『재수사』를 가장 빛나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저자: 장강명(소설가)
    출판사: 은행나무
    출판일: 2022. 8.
    쪽수: 1권 409, 2권 405
    서평자: 송주현(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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