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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식민지 건축: 조선·대만·만주에 세워진 건축이 말해주는 것

    기사 작성일 2023-06-07 10:02:56 최종 수정일 2023-06-07 10: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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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1. 식민지 건축.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식민지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의 모순

     

    "유럽 제국 열강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일본의 식민지나 지배지에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의장을 띤 건축이 다수 설립되었을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이 가설은 대개 잘못되었다. (중략) 대만총독부의 핵심 건물은 모두 퀸 앤 양식의 하나인 다쓰노식이거나 서양 건축의 고전 양식 혹은 튜더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215쪽)

     

    책의 첫 번째 효용은 지식을 얻는 것이지만 두 번째 효용은 인간 사회의 바른길을 찾는 데 도움을 얻는 것이다. 식민 지배의 가해국 사람이 쓰고 피해국 사람들이 읽게 되는 이 책에서는 두 번째 효용이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일단 지식을 얻는 데는 유용한 저작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건축 관련 통계와 정보에 기반하여 대만과 조선,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의 일제 식민지 건축을 바라보았다. 식민지 건축의 양식과 건축 기술, 그리고 건축 재료의 문제들을 다루고, 식민지 건축을 담당했던 사람과 조직 및 그 네트워크를 이해하고자 했다.

     

    자기 나라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식민지 건축물을 지었던 유럽 열강과는 다르게 일제는 서양 건축양식으로 식민지 건축물을 지었다. 유럽 국가가 지배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서구 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였다. 식민지 건축은 식민 통치의 수단으로도 쓰였다. 대만총독부 청사 신축을 둘러싼 찬반 논쟁에서 찬성론자들은 '위용 있는 청사를 세운다면 대만 현지인들의 복종을 끌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신바로크 양식을 채용했는데, 광화문을 헐고 근정전을 가로막아 지었으며 청사 정면을 광화문 거리의 중심선에 맞추었다. '위용'을 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국의 '자존'을 과녁으로 삼은 것이다.

     

    동아시아의 일제 식민지 건축물들에는 붉은 벽돌이 많이 사용되었다. 대만의 경우 원래 목조 건물이 많았는데 흰개미에 의한 피해가 잦았으므로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그리고 서구 건축을 지향하기 위해 붉은 벽돌 건물과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이 지어졌다.

     

    이러한 건축 지식과 함께 인간 사회의 바른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 이 책은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 사실 식민 지배의 유산을 바라보는 이 책의 서술과 관점은 혼란스럽고 모순되는 것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지금 침략과 지배를 다시 묻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고 그 재발을 허용하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한다(12쪽). 조선의 궁궐 안에 들어서는 조선총독부 청사 위치의 폭력성에 대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판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끝부분에서는 "일제의 식민지 건축은 확실히 동시대 높은 수준에 이른 세계 건축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고 식민지 건축의 선진성과 세계성을 말하고 있다(229쪽). 일제가 지배지역에서 서양 건축양식을 적용한 것을 보면 건축양식과 지배 사이에 직접적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도 말한다(215·218쪽). 그러나 식민지 건축물이 '위용'으로서 통치를 도우려 했음은 저자가 말한 대로이다. '서구 건축이 아시아 건축 위에 군림할 만한 것'이라고 하는 건축에 관한 우열 의식이 식민 지배에 사용된 것이다. 유럽 건축을 우러러보는 문화사대주의와 아시아 사회를 내려보는 문화제국주의가 마치 뫼비우스 띠의 안과 밖처럼 서로 붙어있는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축에 든 석재는 조선에서 산출되는 양질의 화강암과 대리석을 직영공사 형식으로 채굴해서 충당했다고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 막대한 양의 석재 채굴과 매입, 운반에 정상적인 절차와 합리적 가격 지불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한 일이다. 그러나 철근과 시멘트의 생산 및 이동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 책에서 조선 내 석재의 채굴과 매입 과정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다.

     

    저자는 식민 통치를 위한 청사보다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시설의 건축이 우선 요구되었고 그 때문에 청사 건축이 늦어졌다고 한다(84쪽). 이는 일제가 식민 통치 지역의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해 애썼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한 조선이나 대만의 총독부 청사는 총독부 설치 후 여러 해 지나서 지어졌는데 재정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두 총독부의 부족한 운영비를 채우기 위해 보충금을 지원해야 했다는 것이다(49쪽). 하지만 식민지의 식량과 광물 등의 자원을 강점했던 일제측의 총 손익계산에서 총독부 운영비란 표피적인 것이다. 총독부 보충금으로 나타나는 재정 적자가 그처럼 중대한 것이었다면 일제는 무엇 때문에 손해가 되는 식민지 확보를 위해 그처럼 전쟁에 광분했던 것일까.

     

    저자: 니시자와 야스히코(나고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역자: 최석영
    출판사: 마티
    출판일: 2022. 12.
    쪽수: 267
    서평자: 박중환(전 국립나주박물관장)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윤일주
야정문화사, 1966
161 p.
    윤일주 지음 / 야정문화사, 1966 / 161쪽

     

    문화체육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체육부, 1997
309 p.
    문화체육부 국립중앙박물관 지음 / 문화체육부, 1997 /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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