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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완벽주의자들: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기사 작성일 2020-08-26 09:22:37 최종 수정일 2020-08-26 09: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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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정밀성의 끝은 어디인가?

     

    "정밀성은 이 시대의 담론 속 어디에나 있다. 현대 사회, 상업, 과학, 기계, 지성의 필수적이고 확실하고 핵심적인 요소다. 그것은 우리 삶 속에 전적으로 광범위하게, 철저히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밀성의 영향을 받는 우리 모두 정밀성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20페이지)
      
    정밀성(precision)의 사전적 의미는 '빈틈없고 정확한'이다. 이 의미를 받아들인다면 단순히 정확한 정도의 특성을 가지는 대상에 대해 '정밀'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스포츠 종목 중 양궁에 비유하자면 10발의 화살이 과녁지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그 궁사에 대해 "정확한 발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정도가 정밀성의 단계로 격상되기 위해서는 10발의 화살 모두가 정 중앙 10점 영역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단 한 발이라도 정 중앙에서 벗어나 있다면 정밀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정밀한 궁사와 같은 인물들을 '완벽주의자'라고 지칭하며, 역사 서술에서 숨겨져 왔던 완벽주의자들과 그들의 업적을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정밀성이 왜 문제가 되고, 왜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집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가 소개하는 첫 사례는 과학과 기술의 역사에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에 대한 과학기술사 서술에서 중요하게 조명되었던 인물은 분리식 응축기(separate condenser)를 개발한 기술적 혁신가 제임스 와트, 그 혁신을 실제로 구현하게 도움을 준 기업가 매튜 볼턴, 혁신의 힌트를 준 것으로 평가되는 루나협회(Lunar Society)라는 과학 단체의 과학자들이었다. 저자는 정밀한 금속 세공을 통해 증기기관의 실린더에서 수증기가 새어나가는 현상을 막아내며 와트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게 만들었던 기술자 존 윌킨슨이라는 완벽주의자를 발굴해낸다. 왜 그 유명한 와트나 볼턴이 아닌 윌킨슨인가? 바로 여기에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첫 번째 목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그동안 역사서술에서 외면 받아 왔지만 정밀성에 대한 자신들의 가치를 고수했던 보통의 기술자들의 작업 내용과 목소리를 복원해냈다.

     

    2장 이후의 내용에서는 각 분야에서 숨겨진 완벽주의자들의 활약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저자의 두 번째 목표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현대로 가까워지면서 허용오차가 줄어든다는 점을 각 장의 부제로 내세우며 정밀한 기계 선반의 등장, 총기 부품의 표준화, 정밀 계측 기구의 등장, 자동차와 비행기의 상용화, 허블 우주 망원경, 이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밀성의 단계에 진입한 반도체 집적회로의 생산 등의 주제를 다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배치된 각 주제들을 통해 저자는 정밀성에 입각하여 표준화된 나사못의 제작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정밀성에 기반한 교체 가능한 부품 제작이 자동차 대량 생산과 보급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정밀 기기의 제작에 얼마나 정밀성이 중요한지 등을 설명하며 정밀성이 특별한 괴짜들의 집착이 아닌 현대 물질문명의 근간이 되는 덕목임을 설득력 있게 강조한다. 이에 더해 정밀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비행기 추락과 같은 참사가 생길수도 혹은 수백억이 투입된 과학프로젝트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며 정밀성의 중요성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저자의 두 번째 목표, 즉 정밀성이 사실은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개념이라는 점이 달성된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허용오차 이라는 숫자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며 초반의 내용과 달리 현실 생활하고는 동떨어진 특정한 영역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읽을지도 잘 모를듯한 원자와 양자 영역의 수치 이야기가 독자에게 정밀성이 이 단계까지 왔다는 점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이 영역의 정밀성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설득해 내기에는 너무 과도해 보였다. 이러한 의문이 떠오를 즈음 저자는 마지막 10장에서 더 이상 제목에서 숫자를 내세우지 않으며 균형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일본의 시계회사 세이코에서 정밀한 쿼츠 시계가 아닌 여전히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있는 모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정밀성의 상징이었던 공장과 연구소가 흔적만 남은 채 사라져 버린 사례를 지적한다. 그렇다. 우리는 소수점 몇 십 단위의 정밀성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소수점 두세 자리 정도의 정밀성을 가진 장인들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마도 저자의 세 번째 목표는 이러한 점을 설득해 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 기계적 정확성에 몰두하는 것이 인간 상황의 다른 요소를 무가치하게 만들고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정밀하다 해도."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 책을 통해 정밀성의 숨겨진 주인공들을 발굴해 내고, 정밀성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그렇지만 아무리 정밀성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다른 가치들과의 균형을 맞출 필요성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각 시대의 난해한 정밀성의 이야기를 롤스 로이스 자동차, 라이카 카메라, 비행기 제트 엔진, GPS 등 친숙한 소재부터 시작해서 풀어 나갔다는 점 또한 가독성의 측면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나쳐왔던 국립무형유산원의 푯말이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떠오른 것을 보면 적어도 서평자는 저자와의 대화에 성공한 듯하다. 다른 독자들도 저자와의 흥미로운 대화에 동참할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저널리스트)
    역자: 공경희
    출판사: 북라이프
    출판일: 2020. 4.
    쪽수: 479
    서평자: 정원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 이학박사)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김명진 지음
궁리출판, 2019
306 p
    김명진 지음 / 궁리출판, 2019 / 306p

     

    알렉산더 데만트 지음 
이덕임 옮김 
북라이프, 2018
712 p
    알렉산더 데만트 지음 /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2018 / 7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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