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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정보 데이터베이스 서평]김일성과 중소분쟁

    기사 작성일 2020-05-29 09:15:00 최종 수정일 2020-05-29 0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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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자주외교의 기원과 형성(1953~1966)

     

    동북아 안보 전문가에게도 소위 '벼랑끝 전술'로 잘 알려진 북한의 공격적 외교전략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어떻게 경제력, 인구, 군비 지출 등 모든 물리적 지표에서 동북아 최약체인 북한이 4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저토록 무모할 정도로 당당히, 과감하게 외교정책을 성공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가? 북한의 핵개발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비확산 레짐(regime)의 집요한 견제와 방해, 더구나 중국, 러시아 같은 북한과 가까운 우방국들의 강력한 반대조차 극복하고 성취해 낸 결과물이기에 더욱 곤혹스럽다. 북한이 내세우는 자주외교가 강대국들과의 전략적 대결에서 어떻게 이런 성과물을 낼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북한의 행태, 향후 행보 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예측과 대비가 가능하고 비핵화나 동북아 안정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질 것이다. 이제까지 쏟아져 나온 북한의 정체성, 북한의 군사전략, 북한 외교 관련 수많은 논문, 저서들에서도 이러한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2019년 9월 발간된 『김일성과 중소분쟁』은 이러한 갈증을 다소나마 해갈시켜 줄 수 있는 저작이다.
     
    저자는 "북한은 왜 대외적 안보위협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동맹을 강화하지 않고 '자주노선'을 선언하게 된 것인가? 북한이 강대국들과의 비대칭관계에서 자율성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던 객관적 요인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본문에서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그 답을 찾아 나간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국제안보 전문가들에게도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상대적 약소국의 경우 자국 안보 강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 경우 안보(security)를 얻는 대신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autonomy)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약소국-강대국 간 비대칭 동맹 관계에서는 동맹 안보딜레마(alliance security dilemma), 즉 원치 않는 방기(abandonment)나 연루(entrapment)의 위험을 겪지 않을 수 없는데 상대적 약소국은 강대국으로부터의 방기를 더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역시 강대국에 고분고분하는 경향을 보이며 공세적, 자율적 외교전략 추진은 자제한다. 북한의 '자주노선' 사례는 국제정치학에서 비대칭 동맹 관계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개념과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기에 대단히 흥미로우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 정전 직후 북한사회가 극심한 피해와 혼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경제적·외교적·군사적 노력을 다하던 1953년부터 북한 자주외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전후복구 건설을 위해 북한 지도부는 소련과 중국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와중에 김일성은 실패로 끝난 한국전쟁 직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나가려 했다. 이후 북한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경제정책의 방향 등에 관한 이들의 간섭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했다. 김일성의 권력 강화를 위해 '종파'분쟁이 격화되자 소련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했고 김일성과 북한 지도부는 이러한 강대국의 내정간섭을 치욕적으로 여기면서 향후 자주외교와 '주체'노선 정립의 계기가 마련된다.

     

    1958년을 전후해 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종료되고 북한에서의 중국군 철수도 완료됨에 따라 북한은 경제발전과 안보강화라는 이중의 과제를 이제는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이데올로기적 견해차와 대미 투쟁 방식의 차이로 불거진 소련과 중국 간의 대립은 점차 격화됐다. 김일성으로서는 이렇게 공산주의 양대거두이자 북한에게 가장 중요한 우방국 둘이 강하게 적대하는 상황이 상당히 곤혹스러운 것이었으나 대중·소 균형외교를 추진함으로서 돌파하고자 했다.

     

    김태형 교수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60년대 들어 남한에서 4·19, 5·16을 거치며 반공, 군사정권이 공고해지고 미국의 대아시아 군사개입도 강화되자 이러한 극심한 안보위협을 탈피하고자 북한은 1961년 7월, 소련·중국 모두와 동맹조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한다. 쿠바미사일 위기 이후 중·소 갈등이 더욱 격화하는 가운데 그동안 중·소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추진하면서 이익을 취하고자 했던 북한이 소련의 군사물자 지원 급감과 이데올로기적 괴리감으로 더욱 실망하면서 한때 완전히 중국에 '편승'하는 선택을 했다. 중국으로부터의 기대보다 훨씬 부족한 원조로는 경제적·안보적 필요를 충족하지 못했고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우려하게 되면서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하자 북한-소련 관계는 다시 회복됐다.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안보위협 상쇄와 경제성장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나라는 결국 소련뿐이었던 것이다.  

     

    한반도 주변 국제관계의 극심한 변화와 중소갈등의 틈바구니에서 군사력 강화, 경제성장, 자신의 권력 강화를 도모했던 김일성이 1966년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체계화된 '자주노선'을 공식 선언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북한에서 발간된 출간물뿐만 아니라 최근 기밀해제된 구소련이나 구 동구권 국가들의 외교관계 기록문서까지 치밀하게 분석, 고증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에서는 북한이 최근 국정 기조로 삼고 있는 '병진노선(핵·경제)'이 이미 1962년도에 북한에서 당시의 난국을 타개하고자 채택한(당시에는 군사·경제) 노선임을 확인할 수 있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북한 핵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재 북한의 핵개발 관심 기원과 초기 활동에 대해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이 갖고 있는 많은 장점 중 하나다.

     

    저자: 김보미
    서평자: 김태형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평자 추천도서: 
    김남국 외 공저, '유럽의 역사 화해와 지역 협력: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 수립에 대한 함의', 이학사, 2019
    로라 니애크 저, 김태현 역, '신외교정책론: 이론과 사례', 모음북스, 2020
    이태동 외 공저, '기후변화와 세계정치', 사회평론아카데미, 2019
    김계동 외 공저, '현대 한미관계의 이해', 명인문화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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