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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휴먼네트워크 전문가 서평]동아시아의 아름다운 스승, 공자

    기사 작성일 2019-12-02 13:41:20 최종 수정일 2019-12-02 13: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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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의 아름다운 스승 공자.JPG

     

    엄혹한 시절, 현관에서 신을 신는 순간을 잡아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단다." 그것은 장성한 자신의 자녀가 최루탄이 난무한 도로를 가로질러 무사히 집에 들어오기를 희구하는 주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또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는 것이 으뜸이니라(百行之本 忍之爲上)"고 한 「명심보감」 '계성편'에 실린 공자(孔子, 기원전 551-기원전 479)의 가르침이 일상에 실천되는 방식이기도 했다. 

     

    공자만큼 한국인의 정체성과 일상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 또 있을까. 이제는 '케케묵은'의 다른 표현법으로 효용성이 높아진 '공자님 말씀'의 주인공을 소환하는 이유다. 저자는 공자를 '아름다움'이란 화두로 소환한다.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본성이라고 하지만 그것의 척도는 사회적인 것이어서 시대, 지역, 인종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판단의 기준은 객관적 규범이 됨으로써 사회문화적인 권력이 생성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아름다운 인물'이 나타난 그림인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공자의 모습을 통해 실존인물 공자의 삶을 설명하고, 그의 가르침의 본체를 당대인들은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통해 시대의 시선과 권력을 도해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의 이야기를 서술적으로 도해"하는 고사인물화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 조선에게 모범적인 인물상을 제시함으로써 누구든 지극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도구였다. 공자의 특이한 용모는 그러한 수행의 대상이 되어간 과정에서 탄생한 것으로 불상을 제작할 때의 원칙인 32상 80종호와 닮아 있음을 지적한다. 큰 키, 기다란 팔, 늘어진 귀와 같은 것은 공자라는 생존한 인물이 도상화 하는 과정에서 그 실재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름을 갖는 장치였다. 똑같은 인간인데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이 다름은 외형으로밖에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공자의 생애를 조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가 태생적으로 사생아였고, 예(禮)에 밝아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이미 당시에 500년 전의 예법을 강조하는 그의 사상이 현실에서 적용할 때 어려울 것을 생각하여 등용되지 못했다. 이(利)에 밝지 못한 그를 내치는 사회적 분위기를 뒤로 하고 그는 여러 나라를 떠돎으로 인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적도 있고, 은둔자에게 조롱올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진정한 노마드(nomade)적 사상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유학의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생전에 3000명의 제자를 길러내고 6경에 통달한 제자 70명을 길러낸 공자는 스승에서부터 성인이 됐다. 실존 인물이 은자의 모습에서 제왕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시각적 이미지의 정치 행위와 연관돼 있다. 그런데 공자의 학문적 가르침이 종교인 유교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종교에서처럼 억지스런 과장이나 지나친 장식이 없다. 인, 예를 지침으로 하고 "검박한 생활을 실현하고자 내면의 미가 강조"된 탓이다. 보통의 인간을 성스럽게 만들어 보여주는 종교미술에서 유교가 택한 검박함은 일상생활과 밀착한 종교 유교의 힘임을 '공자도'는 증명한다.

     

    조은정 초빙교수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

    전통시대 그림은 정치행위였다. 그들이 품은 이상을 드러냄으로써 가치관을 공유하는 매체로 삼은 때문이다.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던 삼황오제의 제요와 제순은 '군주고사도'에 남아 바른 정치의 귀감을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 장언원이 집필한 '역대명화기'에서부터 김홍도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제요와 제순은 이상적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왕의 바른 모습임을 전한다. 이들이 시공을 넘어 기억되는 이유는 공자가 흠모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의 인물 공자를 소환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공자가 흠모한 인물들'을 거론하는 이 책의 2장은 자기계발서처럼 현대의 우리가 처한 지점을 반추케 한다. 

     

    군자의 기상을 간직한 정치가 주공은 스스로 군주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조카를 도와 훌륭한 정치가의 표상이 된 이다. '관주명당'은 주공이 성왕을 안고 조하를 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는 명당을 공자가 둘러보는 그림이다. 공자가 흠모하는 주공을 등장시킴으로써 군자 즉 신하의 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공자는 각종 고사와 일화를 통해 정치적 이념과 군주됨, 신하됨의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시각화함으로써 바른 정치로 이끄는 도구로 삼았다. 그것은 성소에 봉헌되고 내세를 보장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우리라는 당대의 삶을 위한 지침서였다. 유교가 택한 실리성은 그렇게 공자의 모습과 그가 함께한 인물들로 가시화하여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삶이란 늘 맘과 같지 않아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실각하기도 한다. 뜻을 펴는 정치에 맘을 두었던 공자가 노자를 만난 것도 다름 아닌 그런 이유에 있을 것이다. 중국 고사에서 죽음의 세계에서 영혼을 이끄는 위인인 노자는 또한 도가에서는 신선의 반열에 든 이다. 정치에 나아가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뒤로 물러나 산에 은거하는 것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인생의 궁극적인 지점에 '도'로 향한 것임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를 논하는 장면을 통해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일러줬다. '공자견노자'는 일화이자 정치적 삶의 방식을 전달하는 공자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한국, 중국, 이론의 '동아시아문화권'이라는 결속은 사실 공자라는 존재를 통하여 실체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유학은 백제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현해탄을 건너면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유학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시들었다가 부활한 탓에 사무라이 문화가 만든 '공자성적도'의 도상은 성인들의 모습이 헛갈리고 있다. 글로 쓰인 문서보다 시각적 이미지는 그 시대의 사실을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시시콜콜한 예법을 공자의 가르침에 맹종한 결과 조선이 망했다는 주변국의 비판은, 동아시아 유학의 중앙부를 차지하지 못한 데에 따른 열등감의 수식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저자 : 송희경
    서평자 : 조은정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서평자 추천도서 : 
    최열·홍지석 저,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혜화1117, 2018
    윤철규 저, '조선시대 회화 : 오늘 만나는 우리 옛 그림', 마로니에북스, 2018
    김현화 저, '현대미술의 여정', 한길사, 2019
    김경연·신수경 저, '화가 하인두 : 한국추상미술의 큰자취', 혜화11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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