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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휴먼네트워크 전문가 서평]인간 장소 지명

    기사 작성일 2019-09-02 17:52:43 최종 수정일 2019-09-03 10: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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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자이고, 생각하는 자이며, 동시에 이름을 짓는 자다." 조지 스튜어트는 「지구 위의 지명」(1975)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름을 짓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이자 특권이기에 우리는 온갖 이름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땅의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지명'은 땅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인간이 장소에 대한 인식을 거치면서 붙여지게 된다. 지리학자인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우리는 장소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온갖 지명에 둘러싸여 세상을 살아간다. 일상을 살면서 스치듯 마주치는 도로 위의 수많은 표지판, 통과하는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자신이 살고 일하는 동네, 여행을 통해 접하는 산과 바다, 작게는 카페와 음식점 등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지명은 우리의 삶 자체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그만큼 지명이라는 것은 평범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명은 우리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해 주는 특별한 재미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삶을 풍부하게 해 주는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지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첫째, 지명은 인간 장소 인식의 산물이다. "인간은 장소를 인식하여 정체성을 부여하며 이에 상응하는 이름을 붙인다"고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지닌 지명 연구의 기본 전제는 어떠한 이름도 우연히 아무 생각 없이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그 생각은 장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봤다. 인간과 장소 간의 상호작용은 지명에 대한 연구 자체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시사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강남과 강북은 한강을 기준으로 나눈 지명이다. 이는 대상과의 위치적 관계에 근거한 장소 인식이며, 한편 Pacific Ocean(태평양)이라는 지명은 포르투갈 탐험가 마젤란(Magellan)이 '평화롭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다. 이는 현상에 대한 서술과 느낌을 반영한 장소인식으로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둘째, 지명은 태어나서 변화하고 때로는 소멸한다. 저자는 책에서 "지명에도 생애가 있다"는 표현을 썼다. 이는 새로 만들어지는 지명도 있고, 변화하는 지명도 있고, 유명해지는 지명도 있으며 역으로 소멸하는 지명도 있다는 의미다. 예컨대 서초라는 지명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과천군에 속하던 작은 마을로 서초리로 불렸으나 현재는 서울 서초구가 됐다. 이를 지명의 스케일 업(up)이라 한다. 역으로 행정구업 통합으로 소멸된 미금시, 중원군, 진양군 등의 지명은 스케일 다운(down)이 된 사례다. 지명에 대한 스케일 업과 다운은 행정적인 변화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셋째, 지명은 스토리텔링이다. 왜 그곳을 그렇게 부르는가? 그 해답을 주기 위해 장소의 지명에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존재한다. "지명의 유래와 스토리텔링을 알아보는 것은 장소 인식과 더불어 장소와 지명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면서도 쉽고 재미있기 정리하는 또 다른 접근방법"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서울 구로동은 장수했던 노인 아홉 명의 전설에서, 문정동은 병자호란시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는 인조가 마셨던 문씨 집의 우물물에서 비롯됐다는 스토리텔링은 독자로 하여금 장소와 지명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정은혜 교수
    정은혜 건국대학교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조교수

    넷째, 지명은 언어로 표현된다. "지명에 담긴 언어적 요소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정체성의 표현이고 언어적 관성의 산물"이라라는 저자의 말은 '조지아'의 사례에서 명확히 이해된다. 러시아제국·소련의 지배하에 있다가 1991년 독립한 조지아는 주변국들에게 러시아식 표기인 '그루지야'를 지양해달라고 했고, 우리나라는 여기에 가장 빨리 호응했다. 이러한 우리의 외교정책은 유럽의 국가들과 중국이 여전히 그루지야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식민지배의 경험을 겪은 국가로서 조지아의 지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이러한 정책은 교훈이 될 법하다. 

     

    다섯째, 지명은 정치적 행위의 대상이다. "지명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요소를 가지며, 따라서 지명의 변화 역시 정치적 움직임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명은 영토분쟁이나 주권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타이완'을 타이완 섬(Taiwan Dao)으로 표기해야한다는 중국정부, '독도'를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으로 표준 승인하고 있는 미국정부 등은 이러한 사례를 반영하는데, 이 같은 문제는 국가적 권력 및 정치와 상당한 연계가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여섯째, 지명은 분쟁과 갈등의 대상이다. 동해 표기 분쟁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제는 한국인이 2000년 이상 사용해온 동해라는 지명을 존중해야한다는 한국의 제안에 일본이 기존의 일본해 표기를 고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1992년 한국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처음 국제사회에 제기한 이후 꾸준히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렸다. 그 결과 현재 국제수로기구(IHO)는 공유하고 있는 바다 또는 지형물의 명칭에 대해 합의가 필요하며, 이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모든 이름을 함께 쓸 것을 권고하라는 지침을 밝혔다. 동해 병기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이 책은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일곱 번째, 지명은 문화유산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민주화운동의 성지 광주 등 지명에서 발견되는 문화적 요소, 역사, 상징성은 지명을 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이들 지명처럼 이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발견된 지명뿐만 아니라 향후 유엔이 제안한 기준을 기초로 문화유산의 의미를 갖는 지명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마지막 여덟 번째, 지명은 경제적 가치를 갖는 브랜드다. 포항제철, 보성 녹차, 영덕 대게, 몽블랑처럼 지명은 상품의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이는 상품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상품의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인정받게 함과 동시에 지명의 가치도 상승하는 효과를 줄 수 있기에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결국 이 책의 주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은 장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명을 붙인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정의들은 지명이 문화·정치·경제적 가치의 측면으로 무한히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저자의 전문적인 식견을 통해 만나는 많은 지명들 역시 독자들을 새로운 장소·지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재미있고 다양한 대답을 줄 수 있는 게 지명이라는 점에서 장소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접근법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 주성재
    서평자 : 정은혜 건국대학교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조교수
    서평자 추천도서 : 
    정은혜·손유찬 저, '지리학자의 국토읽기, 푸른길, 2018
    피터 애디 저, 최일만 역, '모빌리티 이론', 앨피, 2019
    권상철 저, '지역 정치생태학: 환경개발의 비판적 검토와 공동체 대안', 푸른길, 2016
    이정면 외 저, 'Colors Of Arirang: 아리랑로드 10만km 대장정의 기록', 이지출판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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