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물 및 보고서

    홈으로 > 국회소식 > 발행물 및 보고서

    [서평]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기사 작성일 2019-05-22 11:39:43 최종 수정일 2019-05-22 11:39:43

    •  
      url이 복사 되었습니다. Ctrl+V 를 눌러 붙여넣기 할 수 있습니다.
    •  
    429. 3월 1일의 밤.jpg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3월 1일의 사람들

     

    "3·1운동 때 돌 한번 던지곤 다시는 역사에 떠오르지 않은 수많은 무명씨들 – 그들에게 3·1운동이 어떤 경험이었는지를 설명해보고 싶었다. 그들에게도 3·1운동이 종생토록 생생한 사건이었음을 읽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12페이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기억과 기록에 크게 매이게 마련이다. 무엇이 기록돼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위대한 역사도 깊은 심연에 잠긴 문명처럼 가라앉아 버린다. 우리가 기록했고 또 기억하는 3·1운동의 사실이란 무엇일까. 늘 남녀노소, 거족적이라는 상용구를 매달아 기념했던 그 날의 사실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 책은 그 심연의 기억을 어슴푸레 남아 있는 가느다란 빛에 의존해서 건져내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저 사랑만 해서는 잘 보이지 않았을 연인의 주름과 시름의 기록이다. 

     

    저자는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독립 만세시위를 전개했던 진짜 주역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저명인뿐만 아니라 밤처럼 어둡지만 결국은 여명으로 빛나고야 마는 무명인들이었다고 말한다. 촌로, 학생, 농민, 공장 노동자, 기생 등 이름 없는 '무명씨'들의 정형화되지 않은 말과 움직임들이 3·1운동을 전개한 진짜 주인공들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그 모습만큼이나 다종다양한 형태로 그 언행의 면면을 채워나갔다고 한다. 600쪽이 훌쩍 넘는 책의 마디마디마다 이러한 무명인들의 편린을 엮어 만든 3월 1일들의 기록이 가득하다. 

     

    책은 크게 4개의 부로 구성돼 있고, 각 부는 다시 4개의 장으로 만들어졌다. 제1부는 3·1운동 그리고 세계, 제2부는 1910년대와 3·1운동, 제3부는 3·1운동의 얼굴들, 마지막 제4부는 3·1운동과 문화로 설정하고 있다. 제1부와 제2부가 3·1운동의 환경을 다뤘다면, 제3부와 제4부는 3·1운동의 본질을 서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만 읽으면 당시 신문과 문헌에 열거됐던 색색의 사례들이 이야기처럼 기술돼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계획된 구성과 의도 아래 인물과 사건이 유기적으로 정렬돼 있음을 알게 된다. 요컨대 가급적 3·1운동을 채웠던 다양한 인물과 사건, 그리고 양상을 독자들에게 날 것 그대로 알리면서도, 이들을 논지에 따라 묶어 짧지 않은 독서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저자는 무명인들의 언행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했을까? 저명인들이야 남긴 글과 행적이 많다고 하나, 그저 돌 한 번 던진 것으로 역사에 참여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언행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무명인들, 또는 하위주체(서발턴·Subaltern)는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현대사 연구자 김원은 이에 대해 "명료한 진술 대신 모호한 웅얼거림, 일관된 언설 대신 갈라진 혀로 말하는 서발턴은 지배적 앎의 체계가 작동하기 위한 불가결한 대상이자 그 체계를 교란시키고 완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아포리아로 남는다"며 역사 연구에서 이들 존재에 대한 성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 2011)

     

    이 책에서 저자가 시도하고 있는 무명인들의 면면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곤란하다. 사실 역사를 전공한 연구자로서 저자의 시도는 결코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된다. 목소리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자들의 인식이 얼마나 불분명하고 또 부정확한 것인 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애초부터 '역사적 사실' 보다 '문학적 구성'을 선택한 때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하긴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문학 전공자'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는 자신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말하지 않는 자'들의 목소리를 아주 훌륭히 재현해 냈다. 물론 이 책에서 드러냈던 목소리가 진정으로 그들의 목소리인지 여부를 가리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3·1운동의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두고 이러한 시도보다 더 도전적이고 또한 공감대가 큰 저작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처음 책을 접하고 의아했다. 표지가 어두워 제목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케팅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상품'의 이름을 가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데 그건 그렇지가 않았다. 표지는 이름을 가리는 대신 오히려 본질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표지에 유독 '밤'이라는 글씨가 밝게 반전돼 하얗게 빛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저 어둠 속에 묻힌 듯했던 무명인들의 경험은 훗날 민족의 기억으로 살아남았다. 3·1운동을 경험한 세대는 그 이후 세대에게 상처와 영광을 포함한 기억과 경험을 은밀히 전했다. 거리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남녀노소, 거족적인 형태로 정치적인 주장을 결속하는 유전자가 대물림돼 이어져 온 것이다. 3·1운동은 한국인들의 뇌리에 경험만큼이나 깊고 넓은 투쟁의 흔적을 남겼다. 우리가 해방 이후 수많은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매번 함께 용기 있는 선택을 해 온 까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 권보드래(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출판사 : 돌베개
    출판일 : 2019. 3.
    쪽수 : 647
    서평자 : 조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문학 박사(한국근현대사)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2019 / 333p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2019 / 333p

     

    김정인 지음 / 책과함께, 2019 / 299p
    김정인 지음 / 책과함께, 2019 / 299p

     

    '바르고 공정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 CCL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표시
      라이센스에 의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저작자 표시 : 적절한 출처와 해당 라이센스 링크를 표시하고 변경이 있을 경우 공지해야 합니다.
    • 비영리비영리 : 이 저작물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저작권 표시 조건변경금지 : 이 저작물을 리믹스, 변형하거나 2차 저작물을 작성하였을 경우 공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