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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의 맛과 멋]①그녀가 가는 길 늘 '처음'이었다…"세상을 바꾸는 정치를 꿈꿉니다"

    기사 작성일 2019-04-15 08:27:39 최종 수정일 2019-04-15 11: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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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 국회뉴스ON 인터뷰 
    서점 점원이 꿈이었던 소녀…우연한 기회에 경제학도의 길로

    한미의 대표적 연구소에서 연구위원 역임하는 등 경제에 해박

    시아버지의 뒤 이어 정치인의 길로…정의를 위한 부단한 노력

     

    여성 경제학자, 여의도 정치권의 대표 여성 경제통, 집권여당 수석최고위원, 원내교섭단체 당대표, 헌정 사상 첫 여성 국회 정보위원장 등…. 그녀가 가는 길은 늘 '처음'이란 영예와 함께했다. 금수저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만 같지만 험난했던 여정을 스스로 개척해갔다.


    이혜훈(54·서울 서초구 갑·3선) 바른미래당 의원은 딸 넷에 막내 아들을 둔 가부장적인 집안의 차녀로 자랐다. "남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모든 게 남동생 위주였어요. 우리(자매들)는 완전히 들러리였죠." 학창시절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소설 속의 고고학 발굴현장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님과 학교의 요구에 따라 차선책으로 경제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이 의원은 미국 랜드연구소·한국개발연구원(KDI) 등 한·미의 대표적인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을 지내다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젊은 여성 경제전문가 영입 케이스로 여의도 정치권에 입성했다. 이 의원은 딸 부잣집 차녀로서, 삼형제를 둔 워킹맘으로서, 여성 정치인으로서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야만 했다. 이 의원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국회뉴스ON이 들어봤다.

     

    ◆"여성들의 권리에 대한 생각이 어릴 때부터 많은 편이었죠"


    이 의원은 딸 부잣집의 차녀로 태어났다. 외증조할머니부터 외할머니, 어머니까지 딸만 있는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딸 넷을 낳고 나서야 막내 아들을 얻었다. 이 의원은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당함을 마주했다. 텔레비전(TV) 채널을 돌리겠다며 TV 앞에 누워있던 남동생을 건넜다가 "기집애가 귀한 아들을 넘어갔다"며 혼이 난 뒤 저녁을 굶기도 했다. "막내 남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저희는 거의 투명인간이었죠. 어릴 때부터 '부당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요. 그런 집에서 자라서 여성들의 권리에 대한 생각이 어릴 때부터 많은 편이었어요."

     

    중학생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이혜훈(둘째줄 왼쪽에서 두번째) 의원.(사진=의원실 제공)
    중학생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둘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사진=의원실 제공)


    이 의원은 '서점 점원'이 꿈이었을 만큼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저희 집이 다른 집에 비해 책을 많이 사주는 편인데도 어린이 전집 시리즈 50권이 한 달을 안 갔어요.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어릴 때 천식으로 몸이 약해서 밖에 못 나가니까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 읽는 것만 하는 상황이었죠." 이 의원은 특히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메소포타미아의 죽음', '나일강의 죽음' 은 그가 인상 깊게 읽은 작품들이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하는 걸 어린 마음에 동경했어요. 유적 발굴현장을 다니는 게 좋아(보여)서 고고미술 사학과를 가고 싶었죠."


    이 의원은 고교 졸업을 앞두고 고고미술 사학과를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입시제도는 대입성적을 먼저 받은 후 학과를 지원하는 절차였는데, 성적이 너무 잘 나오자 학교에서 법학과를 가길 강권했다. 집안에서는 딸이 검사·판사와 같은 법조인이 되길 바라지 않았다. 타협을 본 것이 상경대였다. "성적이 (잘) 나오니까 학교에서 절대 고고미술 사학과 원서 도장을 안 찍어줘요. 학교는 법대를 가야 한다고 하고, 아버지는 딸이라서 평생 범죄자들과 맞닥뜨리면서 사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해서 마찰을 빚었죠. 그러다가 결론을 본 게 상대였어요. 경제학과가 뭔지도 모르고 간 거예요."

     

    ◆"워킹맘 시절 날마다 몇 번씩 너무 힘들어 많이 울었어요"

     

    이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UCLA)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미국 유학길은 은사였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권유로 이뤄졌다. "한승수 전 총리가 은사이신데 '여성이니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와서 연구소 같은데 취직하면 좋다'고 하시면서, 우리나라 여성경제학 박사 1호로 KDI에 근무하고 계셨던 김명숙 박사님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그분을 만나 뵈니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분 때문에 유학 갈 때부터 '돌아오면 KDI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UCLA를 졸업할 때 남편 및 두 아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이혜훈 의원(사진=의원실 제공)
    UCLA를 졸업할 때 남편, 두 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의원실 제공)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중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이혜훈 의원(사진=의원실 제공)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중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의원실 제공)

    이 의원은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를 거쳐 귀국해 KDI에 입사했다. 근무여건이 괜찮을 것이라는 한 전 총리의 조언과는 달리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벽은 높기만 했다. 당시는 일하는 여성의 출산조차 이해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는 "한국은 직장에서 여성들의 육아와 출산에 대해 이해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날마다 몇 번씩 어렵고, 너무 힘들었고, 많이 울었다"고 말을 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만삭이 됐는데 (회사에서) 산을 가는 날이었어요. 등산복을 적당히 입고 주차장에 내렸는데 산통이 와서 바로 택시 타고 분만하러 간 거예요. 출산 사실을 회사에 알리려고 전화를 했더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요'가 아니라 '그럼 출산휴가 쓰는 거예요?'라는 반응인 거예요. 굉장히 기막힌 상황이죠. 병원에서도 '만삭인 여자가 등산을 하다니,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반응이었죠."


    2개월 남짓한 출산휴가 기간에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급할 때에는 집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회사로 보내야 했다. "2개월 쉬는 동안 출산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게 '민간의료 활성화 방안 오후 5시까지' 이런 식의 지시가 오면 보내야 하니까…. 집에서도 일해야 하고 쉬지를 못하는 거예요."

     

    ◆"시아버지, '평소 정치를 하면 큰며느리가 잘 할 것' 칭찬"


    이 의원의 시아버지는 내무부 장관과 4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김태호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생전에 며느리에 대해 "정치를 하면 (우리 가족들 가운데) 제일 잘할 것"이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작고로 보궐선거가 치러지자 지구당 당직자와 친척들이 고인의 20년 정치인생 마무리 차원에서 가족 중 누군가 고인의 1년여 남은 임기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다고 했었죠. 평소 고인이 '큰며느리가 제일 잘할 거다'고 하셔서 공천 신청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는 인척관계에 있던 사람은 배제돼서 공천을 못 받았어요."

     

    이혜훈 의원이 국회뉴스ON과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김진원 촬영관)
    이혜훈 의원이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진행한 국회뉴스ON과의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김진원 촬영관)


    이 의원은 2004년 4월 제17대 총선에서 전략공천돼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당시는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후 역풍을 맞을 때다. "당시 한나라당을 제일 싫어하는 계층이 누군지 여론조사해 그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후보를 안방에 공천하는 것이 '전략공천'이었어요. 컨설팅 업체 조사결과 젊은 여성들이 한나라당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거예요. 노무현 정부가 경제 성적표가 안 좋다고 총선 구호를 '경제 살릴 한나라당'으로 정했죠. 그래서 젊은 여성 중에 경제통을 찾아 저한테 온 거예요. 전략공천을 해 줄테니 서초 갑에 출마하라는 권유가 있었어요."

     

    이 의원은 정치권에 첫발을 내딛게 된 건 부당함에 맞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부당한 일이 많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바로 잡으려고 연구소에서 보고서도 쓰고, 개선방안을 내놨지만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친척 중 누군가가 '세상을 바꾸는 건 국회의원이 되면 제일 빠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전략공천 권유가 왔을 때 조금 고민해 보고 받아들이게 된 거죠."

     

    이혜훈 의원과의 인터뷰 ②편 계속 됩니다.

     

    '바르고 공정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박병탁 기자 ppt@assembl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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