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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휴먼네트워크 전문가 서평]기억전쟁 :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기사 작성일 2019-02-26 16:24:50 최종 수정일 2019-02-26 16: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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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한다는 것이 바로 산다는 것"이라고 했던 이는 신학자 마르틴 부버였다. 경험과 기억을 축적하며 의미 있는 존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삶 아니던가. 인간이 불완전한 기억의 존재여서일까. 경험하는 나와 기억하는 나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경험을 통해 외부 정보를 수용해 부호화하고 저장했다가 인출하는 과정에서 여러 변인들에 의해 역동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까닭이다. 정확한 기억에서 편향, 왜곡된 기억까지 다양한 기억의 양태들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기억 구성 과정에 관여되는 여러 변수와 맥락들이 그 기억 현상들을 연출한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태를 외면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 그렇게 말한다. 법정에서 피고인들도 그렇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방어기제를 펼친다. 당연히 검찰 쪽에서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기억을 정확히 재현해내려 애쓴다. 법정 담론의 상당 부분은 기억 전쟁의 형상이다. 역사학자이자 기억 활동가(memory activist)인 임지현 교수의 '기억 전쟁'이 눈길을 끄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밀레니엄 초기에 이른바 '대중 독재' 화두로 한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인문 지성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임 교수가 이번에는 '사회적 기억'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주의는 물론 스페인의 프랑코이즘, 동독과 폴란드의 현실 사회주의, 비시 프랑스, 박정희 지배 체제와 일본의 총력전 체제 등 세계의 여러 독재 체제를 '강제'와 '동의'의 메커니즘으로 성찰했다. 독재라는 현상 이면에 대중의 동의를 견인하고 자발적 동원 체제를 형성하는 다양하고 정교한 헤게모니적 장치들이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평범한 대중의 역사적 책임 문제를 제기한 것이 이른바 대중 독재론이었다. 흔히 독재자에 의한 위로부터의 독재론을 대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독재론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역사적 현실에서 반성적 성찰에 입각한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기억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런 대중 독재론은 매우 도발적이어서 위험하기도 한 담론이었다. 승자의 역사이거나 영웅 중심의 왜곡된 역사를 해체하고, 역사의 주체가 성찰적 시민 일반임을 확인하면서 역사적 책무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심연에서 소망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찬제 교수 
    우찬제 서강대 교수 

    대중 독재론에서 견지했던 반성적 성찰을 통한 사회적 책임과 기억의 문제는 '기억 전쟁'에서 더욱 심화된다.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에서 일본군 위안부, 광주 학살, 난징대학살, 베트남전쟁, 미국 노예제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비극적 장면들을 가로지르면서 다양한 맥락들을 성찰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시종 독자들을 이런 질문으로 이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만큼 구체적인 역사적 현장을 어떻게 인식하고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 것인데, 그런 역동적 탐사와 비판적 인식을 통해, 저자는 이런 질문을 제출한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과거에 대해 책임을 지며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사회적 기억은 어떻게 가능한가?"(54페이지). 이 질문을 위해 저자는 기록 중심의 공식 역사가를 넘어서 기억의 영매자이기를 바란다.

     

    어원적으로 "책임이라는 말 자체가 원통함을 풀어달라는 죽은 자의 목소리에 응답한다는 의미"(13페이지)가 있음을 확인한 저자는, 홀로코스트 등으로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메시지에 응답할 수 있는 전후 세대의 입장과 방식 등을 기억의 문제를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무엇보다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기억의 연대"(49페이지)가 절실한데, "기억 공간 속에서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부정론의 연대"(66페이지)가 여전하니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기억의 연대"와의 전쟁은 현재진행중이라는 이야기다. 저자는 책임 있는 사회적 기억의 연대를 위해 기록을 넘어서 생생한 증언들에 귀 기울이고, 희생자가 공범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희생자로 둔갑하는 실존의 회색지대를 면밀하게 탐사한다.

     

    예컨대 저자는 폴란드 예드바브네 학살 사건을 다룬 폴란드 출신 유대계 역사가 얀 그로스의 '이웃들'을 주목한다. 인구의 절반 정도인 1600명이 나치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실체를 저자가 새롭게 드러낸 것이다. 나치가 아니라 오랫동안 유대인들과 이웃으로 살던 폴란드인들에 의해 비극이 이뤄졌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예드바브네의 비극을 통해 임지현은 "역사적 진실과 거짓, 기억과 망각, 집합적 유죄와 무죄, 가해자와 희생자 같은 이항 대립적 구도"(89페이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유도한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행해진 가해자들의 피해자 코스프레 현상을 다룬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방관자 역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성찰된다. 광주 학살 현장에서 단지 명령을 수행한 이들이 반성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임지현의 '기억 전쟁'은 인간다움의 역사를 위해 자기중심적 기억을 반성하고 다른 기억을 받아들여 책임을 다하며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는 사회적 기억의 형성 가능성을 탐문한 책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가해자 의식과 현상에 대한 전면적 성찰이 돋보인다.

     

    저자 : 임지현
    서평자 : 우찬제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평자 추천도서 : 
    이경신 저, '못다 핀 꽃: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미술 수업', 휴머니스트, 2018
    이청준 저, '날개의 집', 문학과지성사, 2015
    신영 저,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 솔, 2019
    크리스 마커 저, 이윤영 역, '환송대: 영화-소설', 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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