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원의 맛과멋

    홈으로 > 의원실소식 > 의원의 맛과멋

    [의원의 맛과 멋]①'당직 24년차'의 뒤늦은 여의도 입성기…"짧은 기간 하드트레이닝 하고 있죠"

    기사 작성일 2019-01-28 08:48:35 최종 수정일 2019-01-28 08:49:51

    •  
      url이 복사 되었습니다. Ctrl+V 를 눌러 붙여넣기 할 수 있습니다.
    •  
    190128 임재훈.jpg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 국회뉴스ON 인터뷰

    정당의 조직·선거 분야에 정통한 24년차 당직자 출신 국회의원

    제20대 후반기 국회에 첫 등원…그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20개월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따라 '제3의 길' 도전…"혼신의 힘 다할 것"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작고 소소한 것부터 실행해야겠다는 결단과 다짐을 이 자리에서 해봅니다. 특히 20개월 남은 임기이기에 두 배로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신실하게 섬김의 모습을 실천하겠습니다." 2018년 10월 2일 제364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 임재훈(53·비례대표·초선) 바른미래당 의원은 의원선서를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다짐했다. 임 의원은 제20대 국회 막차를 타고 입성했다. 2016년 초 창당한 국민의당의 비례대표 후보 14번. 총선에서 13번까지 당선돼 원내에 진입했다. 제20대 국회가 반환점을 돌고 오세정 의원이 서울대 총장 후보에 공모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기회가 생겼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20개월. 그토록 갈망했던 국회의원이 된 것이 '매우 행복하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라고 했다.


    임 의원은 1995년 10월 김대중(DJ)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공채 1기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 후로 24년째 당직생활을 하면서 조직·선거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걸어 다니는 인명사전'으로 불릴 만큼 정치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조직·인맥 관리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국회뉴스ON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크고 작은 선거를 57번 했다"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분들 중에서는 횟수 상으로는 가장 경험이 많은 편일 것"이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임 의원은 임기 시작과 함께 찾아온 국정감사를 밤을 세우며 준비하느라 대상포진에 걸릴 만큼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현재는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를 맡아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임 의원의 당찬 포부를 국회뉴스ON이 들어봤다.

     

    2018sus
    2018년 10월 2일 제364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임재훈 의원이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사진=의원실 제공)

     

    ◆풍족했던 유년시절, 방황했던 고교시절…어릴 적부터 정치 꿈꿔


    임 의원은 전라북도 익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일본에서 기모노 원단을 수입해 직조·가공, 재수출하는 가공무역 사업을 했다. 지난 70년대 그의 집안에는 자동차가 있을 만큼 남부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을 보면 '돈을 갈퀴로 긁는다'고 하죠. 돈을 많이 벌으셨어요. 굉장히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구김살 없이 컸죠.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하게 느끼고 있어요."


    중학교 3학년무렵 부친이 서울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고등학교(신성고)는 서울 인근의 경기도 안양에서 다녔다. 당시 부친의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가족 모두가 단칸방 생활을 할 만큼 가세가 기울었다. 그는 이 무렵이 '매우 어려웠던 격동기'였다고 했다. "청소년기에 고교 시절이 가장 중요한데 열심히 공부도 안하고 많이 방황했죠. 아픈 추억도 있고요. 제가 인격적으로 성숙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임 의원은 전북 익산이 태어난 고향이라면 경기도 안양은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저는 지금도 익산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요, 고향에 대한 무궁한 애정도 갖고 있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고교 시절을 안양에서 지내면서 공부도 안하고 탈선하기도 했지만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해요. 평생 함께할 믿음과 우정이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죠. 그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제 인생이 굉장히 풍성해졌어요."


    그에게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지만 정치를 하고 싶어 했다"며 말을 이었다. "옛날에 어렸을 때 '너는 꿈이 뭐냐'고 하면 '대통령', '장군' 이랬잖아요. 저는 정치를 하고 싶어했어요. 희한하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런 꿈이 내제화됐고, 고교 때 격동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 꿈은 버리지 않았던 거 같아요. 초지일관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정치를 할 운명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요."

     

    지난해
    지난해 11월 2~3일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중앙당 및 시도당 사무처 연수에서 임재훈 의원이 테이블을 돌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사진=의원실 제공)

     

    ◆DJ 둘째 아들인 김홍업 전 의원의 추천으로 정치권에 첫발 디뎌


    임 의원은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가 영어공부에 매진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는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1년여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다. 영국으로 유학을 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나쁜 짓 빼고는 온갖 종류의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옥수수 농장에서 일도 하고, 하여튼 돈을 모았습니다."

     

    임 의원의 영국생활은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 1992년 말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대중 총재가 이듬해 영국 캠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오면서다. 임 의원은 1990년대 초 영국에서 4년여간 체류를 했다. "영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다가 직장생활을 잠깐 하기도 했어요. 영국사회에서 인연이 되어서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시점에 (김대중)선생님의 부름을 받았죠."


    임 의원을 김 총재에게 소개해 준 것은 DJ의 둘째 아들인 김홍업 전 의원이다. 그는 김 전 의원을 '인생멘토', '보스'라고 불렀다. "김 대통령님을 모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김 전 의원이에요. 저를 굉장히 예뻐하시고 신뢰하셨죠. 아들이 아버지에게 저를 추천해주신 겁니다. 김 전 의원님을 통해서 대통령님을 사실상 모시게 됐고, 정당생활을 하게 됐기 때문에 저한테는 너무나도 존경스럽고 고마운 분이십니다."


    김 의원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정당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조직·선거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제가 당 생활의 대부분을 조직파트에서 일했어요. 지금까지 선거를 57번 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선거에 관해서는 가장 경험이 많을 거예요. 자타가 인정하는 조직·선거 전문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합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큰 자양분이 되고 있어요."

     

    임재훈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한 국회뉴스ON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임재훈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한 국회뉴스ON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유윤기 촬영관)

     

    ◆의원선서 이후 곧바로 국감 돌입…"대과 없이 끝나 너무 감사해"


    임 의원은 2016년 초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를 따라 국민의당 창당에 합류했다. 20년 넘게 몸담은 민주계열 정당을 떠나 '제3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그때의 결단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을 이었다. "많은 분들이 '큰집에 있다가 작은집으로 가면 신분도 불안하고, 생활도 어렵고, 여러 가지로 불투명한 게 아니냐'고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가치, 철학, 이념, 그리고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택했고요. 전혀 후회는 없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회복하고,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신임을 받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


    임 의원은 20년 넘게 당직자로 근무했지만 국회의원의 삶은 생각과는 달랐다. 그는 지난해 9월 사임한 오세정 전 의원의 뒤를 이어 비례대표를 승계받았다. 첫 등원을 하고 본회의장에서 의원선서를 한 2018년 10월 2일. 그는 곧바로 국정감사에 돌입해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했다. "철야를 밥먹듯이 하고 거의 날밤을 새면서 공부했거든요. 우리 보좌진들이 열심히 도와줘서 대과없이 끝난 거 같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 3법' 처리 과정을 겪으면서 신입생 국회의원으로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이렇게 고민하거나 열심히 하는 줄 잘 몰랐거든요. 하드 트레이닝(혹독한 훈련) 하고 많을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임재훈 의원과의 인터뷰 ②편 계속 됩니다.


    '바르고 공정한 국회소식'

    국회뉴스ON 김진우 기자 bongo79@assembly.go.kr

    • CCL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표시
      라이센스에 의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저작자 표시 : 적절한 출처와 해당 라이센스 링크를 표시하고 변경이 있을 경우 공지해야 합니다.
    • 비영리비영리 : 이 저작물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저작권 표시 조건변경금지 : 이 저작물을 리믹스, 변형하거나 2차 저작물을 작성하였을 경우 공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