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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민란의 시대

    기사 작성일 2017-07-05 16:57:32 최종 수정일 2017-07-10 17: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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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민중'을 주체로 바라보기

     

    지난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촛불'로 지칭되는 시민들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대한 변화를 만들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여기 소개할 책 『민란의 시대』에서 언급하듯 이런 현상을 '촛불 시민혁명' 혹은 '민중 운동'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2017년 한국 사회에서 '민란의 시대'라는 제목이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의 마지막 100년'이라는 책의 부제에서도 드러나듯이, 19세기는 민란의 시대였다. 곳곳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목숨을 건 난(亂)을 일으켰다. 하지만 역사 서술에서 민란은 무시되거나 시대적 배경으로 간략히 서술될 뿐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나 망국 이전에 일어난 몇 차례의 의병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민란을 체계적으로 엮은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민란을 일으킨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자료가 거의 없고 그들을 반역자로 규정한 자들의 기록만이 남아있기에, 이런 현상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심지어 민중을 주체로 놓고 역사서술을 하겠다던 민중 사학조차, 오히려 민중을 타자화하거나 전형화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더 이상 민중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 시대에 『민란의 시대』라는 책이 출간됐다. 얼핏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지만, 앞서 언급한 '기시감'을 떠올려본다면 오히려 2017년에 어울리는 책인 셈이다. 저자는 많은 양의 자료를 섭렵해 그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민란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정조(正祖) 사후 세도정치의 등장부터 시작하여 관서 농민전쟁, 구월산 봉기, 삼남 농민 봉기, 동학농민전쟁, 그리고 그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난 의병까지 다양한 민란의 배경, 경과, 결과, 가담자 명단까지 꼼꼼히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조선시대 중죄인의 공초를 기록한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이 10년 만에 완역되긴 했지만, 권력자에 의해 곳곳에 구멍이 뚫려 맥락을 잡기 힘든 사료로 일관성 있는 텍스트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어려움에도 이 책은 19세기 민중의 역사를 잘 살려냈다. 책을 읽다보면 조선 후기의 혼란한 상황과 더불어 역동성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시기는 "정치사의 관점에서 보면 혼란되거나 정체된 시기였으나 민중사에 입각해서 풀면 새로운 사회변동이 일어난 시대"(p. 19~20)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도 하나 있다. 이 책의 초반부에 민란의 원인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교과서나 개설서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각종 민란에 관련된 사료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해석이 쉽지 않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지역 차나 시기별로 나타나는 차이가 좀 더 입체적으로 드러났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각 지역의 상황이나 특징처럼 간접적인 정보를 사건 분석에 활용한다거나, 『추안급국안』 같은 자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저자는 사료의 한계 때문에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분위기"를 느끼며 "얽히고설킨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 지경"(p. 174)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역사가에게 상상력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소설가를 비하하는 표현은 결코 아니지만, 역사가에게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만큼이나 치욕적인 비난은 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역사가는 자료를 근거로 한 '사실'에 집착한다. 하지만 남겨진 문서 자료가 사실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또한 역사가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말할 기회가 없었던 민중의 목소리를 복원하려면 상상력은 필수가 아닐까? 공초의 행간을 읽으며 합리적인 상상이나 의심을 하는 것이 과거의 민중을 연구하는 역사가의 책무는 아닐까?

     

    책을 읽으며 그동안 연구 대상으로서의 대중과 독자로서의 대중, 모두를 너무 쉽게 포기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또 '민중' 개념이 지닌 전형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왜 항상 민중은 '복수형 단수'로 지칭될까? 왜 그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만 묘사되는 걸까? 다양한 주체의 욕망과 이기적인 생존 본능, 근시안적인 측면 또한 민중의 모습, 다시 말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어쩌면 이 책은 역사학의 대선배가 후배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고 격려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책이 항상 그러하듯, 전공자가 아니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저자 : 이이화(역사학자,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건립추진위원장)
    출판사 : 한겨레출판
    출판일 : 2017. 1.
    쪽수 : 284
    서평자 : 정일영
    서강대학교 한국학토대사업연구팀 선임연구원(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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