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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실에서] National Assembly? Rational Assembly!

    기사 작성일 2016-05-16 10:33:50 최종 수정일 2016-05-17 14: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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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이번 내리실 역은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역입니다.”

     

    대한민국 국회 앞에는 지하철 9호선 역이 있다.
     
    아침 8시 반. 국회의사당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 
    ‘지옥철’이라는 비유가 모자랄 것 없는 객차에서 넘치는 인파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던 ‘여의도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준비를 한다. 

    “This stop is...”
    영어 안내가 이어진다. 목적지의 영어식 이름은 “National Assembly”다.

     

    Assembly. 의회, 입법기관 또는 집회란 뜻이다.
    National은 국가, 국민이란 뜻이니 National Assembly는 국민의 의회, 국가의 입법기관. ‘국회(國會)’다. 

     

    내릴 역을 기다리는 기자 귀에는, 그런데 이것이 “Rational Assembly”로 들릴 때가 있다.
    National Assembly가 Rational Assembly라니 이것은 환청(幻聽)인가. 
    래셔널 어셈블리. 합리적 의회, 이성적 입법기관은 환상(幻想)일까?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의 제헌국회가 출범한 이래 열아홉 번의 국회가 있었다. 
    2016년 5월 30일. 스무 번째 국회, 그 구성원들의 임기가 시작된다.

    오는 5월 29일 수명을 다 하게 될 19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얻었다.
     

    바람부는 국회의사당.jpg

     

    18대 국회가 끝나기 직전 통과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은 예전 본회의장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이나 상임위 회의장 출입문을 해머로 때려 부수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더 이상 안 봐도 되게 했지만, 5분의 3 이상 동의 없이는 쟁점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이른바 ‘식물국회’의 부작용도 낳았다. 
    19대 국회가 끝나가는 지금, 국회선진화법을 놓고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그대로 두고 운영을 잘하면 된다’는 견해가 엇갈린다.
    하지만, 정의화 의장이 지난 2월 23일 ‘테러방지법안’을 심사기일 지정한 이른바 ‘직권상정’ 이후 8박 9일에 걸쳐 진행된 필리버스터는 국회선진화법이 19대 국회에 남긴 하이라이트이자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 , deliberative democracy)의 새로운 실험장이도 했다.

     

    4.13 총선 결과 20대 국회는 16년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3교섭단체 체제로 시작한다.
    18대, 19대 국회 연속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새누리당은 지난 4.13 총선 결과 122석에 그쳐 제1당 지위를 잃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내 준 후 의회에서도 제2당에 머물던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으로 간발의 차이나마 제1당이 됐다. 새 정치세력을 자처하며 등장한 국민의당은 호남과 정당투표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38석을 얻어 제3당이 됐다. 정의당은 19대보다 1석을 더해 6석을 얻었고, 공천 파동 속에 탈당했다 당선된 인사 등 무소속은 11석이다.

     

    20대 국회의 화두는 ‘협치(協治)’다. 협력해서 하는 정치다. 
    어느 한 쪽 정파가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두 정파가 손을 잡아도 다른 정파를 따돌릴 수 없게, 유권자 국민이 권력구도를 분할해 놓았다.

     

    새누리당은 정진석 당선자를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고, 더불어민주당도 우상호 의원을 원내 새 사령탑으로 뽑았다. 국민의당 원내대표로 합의추대된 박지원 의원까지 20대 국회 운영을 이끌어갈 3각 편대가 완성됐고, 각 교섭단체 대표들은 원내부대표 인선도 완료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3일(금) 3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의 회담에서 3당 대표와 1분기에 한 번씩 정례적으로 만나기로 합의하는 등 소통과 협치에 나서는 모양새다.

     

    협력은 상대방을 알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방이 옳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합리적 여유’에서 소통의 문이 열린다.

     

    의회정치(parliamentary politics)는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다. 독선과 불통이 아닌 대화와 타협은 ‘나보다 상대방이 나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합리와 이성은 ‘나의 오류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국정을 주도하는 여(與)도, 비판하며 견제하는 야(野)도 ‘우리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합리적 자기성찰을 우선할 때 격조 있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에는 품격(品格)이라는 것이 있다.
    웨스트민스터 궁(Westminster Palace)에서 열리는 영국 의회에서는 여당의 대표의원인 총리가 야당 의원과 작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놓고 국정을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기에 찬 야당 의원이 셰익스피어 한 구절을 인용하며 집권여당 총리의 실정을 몰아세운다. 궁지에 몰리는 듯했던 총리는 “의원님 말씀을 이해하나 이런 구절도 있다”며 야당 의원의 공세를 막아낸다. 집단 고성이나 최루탄 투척은 없다.

     

    의회정치가 지향할 바는 ‘동물국회’도 ‘식물국회’도 아니다. 
    상대방의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 바탕에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 사람답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국회’를 국민들은 원한다.

     

    저녁 7시. 
    국회의사당역. National Assembly stop.
    아침 지하철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던 직장인들이 하루에 지친 몸을 구기며 다시 올라탄다.

    20대 국회는 합리적 의회, 이성적 입법기관, 'Rational Assembly'가 되기를 바라면서.

     

    정형기 국회ON 선임기자
    정형기 국회ON 선임기자

     

     

    정형기 선임기자 kaf2002@na.go.kr

    국회ON. 생각을 모아 내일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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